10시간 랜선공연 여는 크라잉넛 음식다큐 ‘삼겹살…’ 주제곡 만들어 “판소리-아일랜드 북까지 동원, 국적불명 포크 록 권주가 됐죠” 데뷔 26년… ‘한국판 원월드’ 준비
지난해 마포문화재단이 주최한 온라인 페스티벌 ‘인디 크리스마스 선물’에 출연한 데 이어 다음 달 대규모 온라인 공연 ‘경록절 인 더 하우스’를 여는 록 밴드 ‘크라잉넛’.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경록(베이스기타) 김인수(아코디언, 키보드) 이상혁(드럼) 이상면(기타) 박윤식(메인보컬, 기타). 마포문화재단 제공
‘야들야들 살코기/쫄깃한 껍데기/마늘 쌈장 상추 깻잎/다 같이 어우러져 … 친구 가족 직장 동료/헤어진 연인까지/우리의 시간 모두/삼겹살 파이어∼.’
불판 위 고기 지글거리는 소리에 왁자지껄 셔플 리듬의 포크 록 권주가가 섞여 화면을 달군다. KBS 1TV에서 방영(지난해 12월)한 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인 음식 다큐 ‘삼겹살 랩소디’의 동명 주제곡이다. 국내 1세대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이 처음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주제곡이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음악 작업실에서 만난 다섯 멤버, 박윤식(메인보컬, 기타)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기타) 이상혁(드럼) 김인수(아코디언, 키보드)는 “본방송 시간이 오후 9시 40분이었다. 방송 내내 삼겹살을 보니 ‘야식 욕망’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게 달린 2020년
1995년 결성해 ‘말달리자’로 데뷔한 크라잉넛은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알아주는 주당이다. 마포 일대에서 삼겹살만 수천 판 구웠을 거란다. ‘다죽자’(1999년 2집) 정신으로….
“한창 때는 공연 뒤풀이하다 너무 마셔서 머리 깨져 병원 가기 일쑤였죠.”(박윤식)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한번은 제가 외계인이 잡으러 온 줄 알고 의료진과 사투를 벌였대요.”(이상혁)
철없던 시절 이야기다. 모두 40대인 지금은 한 씨만 빼고 가정을 꾸렸다. 많이 점잖아졌다. 적어도 무대 아래에서는….
텅 빈 캘린더 덕에 ‘말달리자’ ‘룩셈부르크’ ‘밤이 깊었네’ 등 히트곡을 다시 편곡하고 녹음한 25주년 기념앨범 제작에 집중했던 건 좋은 일. 온라인 콘서트로 뜻밖의 팬들을 만난 것도 그랬다.
“직장과 가정 때문에 공연장을 못 찾던 팬들이 아기 재우고 모니터 앞에 앉더라고요. 저희도, 팬들도 새 환경에 적응해 가는 중이죠.”(이상면)
○ 2월에 한국판 ‘원 월드’ 온라인 콘서트 준비
지하 클럽 ‘드럭’에서 시작해 역사를 쓴 크라잉넛은 코로나19 때문에 브이홀, 무브홀 등 공연장이 줄줄이 폐업하는 요즘 홍익대 앞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한경록은 “우리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무대 위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관객과 소통하며 힘을 얻어야 하는 신인 음악가들이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크라잉넛은 다음 달 11일 온라인 마라톤 콘서트 ‘경록절 인 더 하우스’에 참여한다. 지난해 4월 레이디 가가가 이끈 릴레이 콘서트 ‘원 월드: 투게더 앳 홈’이 모델이다. 본디 ‘경록절’은 한경록의 생일(2월 11일)잔치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올해는 더 많은 음악가와 공연하며 남다른 의미를 담기로 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