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전담공무원 동행 현장
11일 오후 4시 반경 서울의 한 반지하방.
아동학대전담공무원 A 씨가 초인종을 누르자, 바깥으로 나온 40대 여성이 차가운 눈빛으로 고성을 질렀다. 이 여성은 지난해 11월 쓰레기 가득한 집에서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방임한 정황이 드러나 아동학대 조사대상에 올랐다. 이날도 집 바닥에는 쓰레기와 옷가지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매일 매일이 전쟁이고 지옥 같죠. 조사를 거부하면 과태료 처분을 내릴 순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저소득층은 어차피 내지도 않기 때문에 별 의미도 없어요. 괜한 행정력만 낭비할 뿐이죠.”
○ 겨우 2주 교육받고 현장 배치
지난해 10월 숨진 정인이 사건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막상 현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방자치단체 소속인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시스템도 전문성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생긴 건 지난해 6월 경남 창녕에서 아홉 살 여아가 맨발로 4층 발코니를 탈출했던 아동학대 사건이 계기였다. 이전까지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민간에서 맡았던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올 1월부터 공공기관이 운영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 측은 “현재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118곳에 전담공무원을 배치해 운영 중”이라고 전했다.
몇몇 지자체는 지난해 10월부터 선제적으로 전담공무원을 두기 시작했다. A 씨가 근무하는 자치구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A 씨는 “조사 업무를 한 번도 맡은 적 없는 데다 전문적인 교육이나 기술 습득도 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떠맡았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배치 전에 받는 교육은 단지 2주 80시간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론 교육 40시간은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 “가족관계증명서조차 볼 권한 없어”
전담공무원을 뒷받침할 시스템도 부실하긴 마찬가지다. 현장 담당자들은 “사건 대상자에 대한 정보 파악도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에 접수되는데, 해당 시스템에서는 주민등록등본과 초본, 수급자 증명 등만 조회되는 수준이다.
A 씨 역시 정보 부족을 뼈저리게 느낀 사례가 있다. 지난해 10월 ‘한 여학생이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 자료만 갖고 면담을 진행하는 동안 A 씨는 이 사건의 결정적인 정보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해당 학생의 아버지는 계부였다. 경기도의 한 아동학대전담공무원도 “최소한 가족관계증명서와 가해 의심 보호자의 전과 기록 정도는 파악할 권한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당분간은 기존에 학대조사를 담당하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실무자를 채용하고, 장기적으로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역량을 향상시킬 교육 체계를 마련해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