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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정세 키워드는 ‘재출발’… 美, 인태구상 韓동참 요구할것”

입력 | 2021-01-15 03:00:00

2021 새해특집
[글로벌석학 인터뷰]<5> 나카니시 히로시 日교토대 교수




지난해 12월 일본 교토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한일 신시대를 위한 제언’이란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한 나카니시 히로시 교토대 교수. 2010년 출간된 이 책은 그를 포함한 양국 학자 26명이 제언한 양국 관계 개선 방안을 담고 있다. 나카니시 교수 또한 “밝은 미래를 위해 두 나라가 협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교토=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일한(한일) 양국이 협력해야 한다.”

동아시아 정치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나카니시 히로시(中西寬·59) 일본 교토대 대학원 법학연구과 교수가 동아일보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의 존재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야 한다”며 “군비 감소 등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이 대중국 포위망 격인 인도태평양 구상에 가담하길 기대했다. 굳이 일본이 아니더라도 20일 출범할 조 바이든 신임 미국 행정부 또한 한국에 “인도태평양 구상에 동참하라”고 거듭 촉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코로나19로 양국 모두 세수는 줄고 정부 지출이 늘었다”며 경제 분야에서의 협력 또한 당부했다.

양국 관계의 최대 현안인 위안부 배상 및 징용 판결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등이 대북 정책, 도쿄 올림픽에서의 협력 등을 징용과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 “징용과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은 일본 외교에서 미국, 호주, 인도 등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교토대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역사학부 박사과정을 거친 나카니시 교수는 일본국제정치학회, 외교정책연구회, 한일신시대공동연구프로젝트 등 여러 학회와 정부 위원회에서 위원 및 이사장을 지냈다. 지난해 12월 16일 교토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난 후 최근 서면 인터뷰를 추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1년 동아시아 정세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인가.

“재출발이다.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미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미, 북-미, 미중, 미일 관계 등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바이든 정권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말기에 중단했던 한미 군사훈련을 재개할 수도 있다. 한국이 이런 움직임에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집권 당시 그와 트럼프 대통령의 친분이 두터웠지만 미일 실무진 협의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양국 지도자의 친밀도가 아닌 외무성, 방위성 등 각 부처의 실무 협의가 중심이 되는 정상화 과정이 진행될 것으로 본다. 미중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법원이 8일 일본 정부에 대한 위안부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일본 정부와 여론은 징용 문제에 이어 또다시 1965년 청구권협정을 부정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양국 관계를 곤란하게 하는 판결임에 틀림없다. 일본 측은 ‘한국 정부가 청구권협정에 기초해 배상을 대신 해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양국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도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일본은 청구권협정으로 분명히 해결된 문제가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로 뒤엎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한국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 측은 일본 기업 및 정부가 상징적으로 배상에 참여하는 형태를 원하는 것으로 아는데 일본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다. 여론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이를 근거로 한국에서 추가 소송이 잇따를 것이다. ”

―지난해 9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 출범 당시 그가 아베 내각과 다른 태도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근거 없는 기대감이다. 스가 총리가 아베 전 총리보다 더 원칙주의자일 수 있다. 특히 2015년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총리는 위안부 합의를 타결시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많은 힘을 쏟았다. 그래서 한국 측이 사실상 백지화시킨 것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2019년 7월 반도체 수출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일본의 최종 방침을 정리해 당시 아베 총리에게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다. 스가 총리가 양국 관계를 더 나쁘게 하는 안을 내놓지는 않겠지만 개선을 위한 새 방안을 내놓지도 않을 것이다.”

―해법은 없나.

“먼저 양국 젊은 세대가 더 깊은 대화를 해야 한다. 두 나라 젊은이들은 문화, 세계관 등에서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과거 양국 관계의 축이 정치, 경제, 안보였다면 이제는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국제정치 측면에서 미중 대립이 격화하면서 미국 ‘1극’ 체제에서 미중 ‘2극’ 시대로 변하고 있는 것도 양국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나라가 이 2극 체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협력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두 나라가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공동 대응한다면 양국의 군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외교에서 현재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국가는 어디인가.

“우호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호주다. 양국은 2000년대부터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호주가 중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데 이런 점이 양국 협력을 강화하는 면이 있다. 호주와 마찬가지로 ‘쿼드’(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4개국의 안보 협의체) 멤버인 인도 역시 중요하다. 또 동남아시아에서는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와 해양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다음은 영국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당장 이달부터 양국 경제연대협정(EPA)이 발효된다. 영국의 해군력 또한 일본에 중요하다. 물론 한국도 중요하다.”

―한국 순위가 매우 뒤쪽에 있다.

“징용, 위안부 문제 등은 물론이고 한국이 인도태평양 구상에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질 것 같다. 바이든 정권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구상을 계승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중국을 노골적으로 배제하지는 않더라도 동맹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에 압력을 가하려는 느낌이다. 한국이 인도태평양 구상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일본이 한국의 중요도를 판가름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잘 알지만 바이든 정권 또한 한국에 ‘인도태평양 구상에 얼마나 기여를 할지’를 곧 물을 것이라고 본다.”

―일본과 중국의 관계는 우호적으로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최근 2년간 미국과 중국이 심하게 대립했다. 중국은 호주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아베 정권 말기부터 스가 내각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우호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양국 관계의 기초가 튼튼하다기보다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의 전술일 가능성이 크다.

두 나라가 시 주석의 방일 여부를 논의해 왔는데 분기점은 9월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라고 본다. 중국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는지 보고 (반중 여론이 줄어드는 등) 일본 상황이 정비됐다고 판단하면 방일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코로나19가 동아시아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중국이 자국 내 감염 억제에 성공하면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각국이 급속히 커지는 중국의 힘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로 경제에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북한이 더 과격하고 위험한 방향으로 움직일지, 타협적으로 움직일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일본과 한국은 공통 과제를 안고 있다. 코로나19로 세수는 줄고 정부 지출은 커졌다. 일본은 2020년 무려 112조 엔(약 1180조 원)의 국채를 발행했다. 향후 폭탄이 될지 모른다. 두 나라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지속 가능한 경제 체제를 만들고 협력해야 하는 이유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위해 무엇을 대비해야 하나.

“코로나19 백신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달려 있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어느 정도 정상화하지 않을까 예측한다. 이때 물가 상승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각국이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내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돈을 풀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부동산 분야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처럼 경제 혼란이 정치 혼란으로 번질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주요 7개국(G7), 주요 20개국(G20) 등을 통해 국제 사회가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카니시 히로시(中西寬) 일본 교토대 교수―1962년 오사카 출생
―1981∼1987년 교토대 법학 학사 및 석사
―1988∼1990년 미국 시카고대 역사학부 박사과정
―1991년 교토대 법학부 조교수
―2002년∼현재 교토대 대학원 법학연구과 교수
―2016년 교토대 공공정책대학원장
교토=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