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걸 한예종 무용원 교수 중학생때 엄마 손 끌려 발레 입문, 국내 발레리노 최다 ‘최초’ 타이틀 “작년 안식년, 3번 수술대 올라… 32년 발레인생 돌아볼 기회 고난 뒤에는 늘 교훈이 남는 법, 내달 4일 공연 등 벌써부터 바빠”
최근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김용걸 교수는 “저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 평생 춤을 췄다. 하지만 요즘 후배들이 저를 보면서 희망을 얻었다고 할 때 힘이 난다”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30년 넘게 무대를 누빈 발레리노의 몸은 구석구석 성한 데가 없지만 열정만큼은 결코 식지 않았다.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무용원 교수(48)는 전성기 때에 비해 키가 3∼4cm 줄었다. 무대에서 격한 동작을 소화하느라 연골과 인대가 심하게 닳아서다. 그는 지난해를 안식년으로 보냈다. 다른 교수들은 여행도 다니고 편히 쉰다지만 그는 고장 난 몸을 돌보느라 한 해를 썼다. 발레리나를 수시로 들어올리던 어깨는 양치질을 하기 힘들 만큼 망가졌다. 지난해에만 세 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후배 무용수와 제자들도 공연을 멈춰야 했다. 김 교수는 “의도치 않게 2020년은 32년 발레 인생을 돌아볼 기회였다”고 했다.
국내 발레리노 가운데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그를 서울 서초구 한예종 캠퍼스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1998년 김지영과 파리국제무용콩쿠르 클래식발레 커플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수상 직후 그는 투박한 사투리로 “한국에도 이런 무용수가 있다는 걸 알려 뿌듯하다”며 기뻐했다. 국립발레단 주역으로 활약하던 그는 2000년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프랑스에서 봤던 ‘섹시하고 세련된’ 발레를 잊지 못했다. 오디션 끝에 그는 동양인 남성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합격했다.
‘쫄쫄이 타이츠’가 수줍어 발레에 정을 붙이지 못하던 그는 부산예고에 진학한 뒤 달라졌다. “무대에서 넌 때깔이 난다”는 스승의 칭찬에 힘입어 발레에 빠져들었다. 당시엔 귀했던 해외 무용수들의 영상을 수십 번씩 돌려봤다. 1994년 대학 4학년 땐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탔다. “삼수 끝에 얻은 결실이라 부모님과 같이 미친 듯 기뻐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는 정적으로 보냈지만 올해는 벌써부터 지방 공연장을 바쁘게 오가며 예열 중이라고 했다. 다음 달 4일 광주시립발레단의 ‘발레 살롱 콘서트’, 4월 16∼18일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빛, 침묵 그리고…’ 등 여러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어려움이 많았고 지금도 힘들지만 고난 뒤에는 늘 교훈이 남는다”며 “무대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나중에도 이 시기를 잊지 않겠다. 발레만 보며 진심으로 살았던 김용걸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