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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 기부’는 악행, ‘이익공유’는 선행인가[오늘과 내일/홍수용]

입력 | 2021-01-18 03:00:00

기업 목소리 외면한 ‘자발적 참여’ 압박
다수가 느끼는 박탈감, 정치에 이용 말라




홍수용 산업2부장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코로나19로 이득 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코로나 이익공유제’를 언급한 지 이틀 만에 민주당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2017년 7월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인상 카드를 갑자기 꺼낸 뒤 일사천리로 세율을 높인 속도전을 떠올리게 한다.

이익공유제를 제안했다고 사회주의자로 몰아세울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동반성장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제도를 논의했다. 대기업이 협력회사와 수입을 나누는 건 영국 롤스로이스사도 하고 있다. 이 대표 말대로 기업과 거리를 두는 ‘팔길이 원칙’만 지킨다면 별문제 있겠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익공유제는 가진 자가 선의로 자기 몫을 조금 떼어주는 식이 아니다. 제도를 설계한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현 정부 초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의 설명은 이랬다. 첫째, 고위험산업에서 대기업과 협력사는 같은 밸류체인(가치사슬)으로 묶여 있다. 한배를 탄 협력업체는 일종의 기업 내부자인 만큼 성과급을 나누는 건 이상할 게 없다. 둘째, 이익공유제는 기부가 아니다. 기부라고 하는 순간 사회공헌활동이 된다. 자발적 기부보다는 이상민 민주당 의원이 말한 사회연대세나 부유세가 이익을 나누는 실질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 코로나 같은 돌발적 일시적 변수로 기업이 수익을 냈어도 협력업체의 기여분은 인정돼야 한다.

기업이 밸류체인 안쪽에선 세금 형태로 이익을 의무적으로 나누고, 밸류체인 바깥쪽에선 자발적 기부를 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다고 손실이 났을 때 보상해주는 장치 같은 건 없다. 이 카드가 정치적으로는 먹혀 사회가 두 쪽으로 갈렸다. 지금은 자신이 남들보다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다수인 불안한 시기다. 부동산 주식 가격이 오르면서 자산 격차도 커지고 있다.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소외감, 박탈감은 더 넓게 퍼진다. 중산층 이상도 막연하게 자산 상승기에 소외되고 있다고 느낀다. ‘사람은 왜 불평등이 심할수록 자멸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나’라는 연구를 한 키스 페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에 따르면 실제 재산 규모와 상관없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재분배 정책을 지지한다. 그러니 현재의 편 가르기 국면서 유리한 쪽은 여당이다. 선거를 앞두고 뜬구름 잡는 이익공유제가 툭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고, 돈 버는 부자는 따로 있다는 게 동학개미의 심리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람들은 먼 미래를 보기보다는 눈앞의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여권은 기업을 압박하며 만든 갈등구도를 4월 선거에 이용하려 할 수 있다. 이익공유제는 자발적 기부에 그치지 않고 사회연대세나 부유세로 확대될지 모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재산권이 침해되고 성장동력이 약해질 거라며 펄펄 뛰지만 정부가 이런 목소리에 귀를 닫은 지 오래다.

기업들은 법인세 인상보다 더 고약한 것이 자발성을 가장한 기부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기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기부를 하지 않을 자유가 배제된 상황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업이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진 지난 정부에서 미르재단에 출연한 것과 현 정부에서 이익공유제에 따라 돈을 내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 기업인은 “돈을 걷는 쪽이 ‘나쁜 사람’이냐, ‘착한 사람’이냐의 차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현 정부는 착하게 걷어서 착하게 쓸 예정이니 지난 정부와는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미르재단을 생각해낸 사람도 자기들은 전두환 정권의 일해재단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홍수용 산업2부장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