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살 ‘그림자 아이’의 비극
“평소에도 아이가 집 밖에 나오는 걸 본 적이 없어요.”
18일 오후 12시 반경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한 주택가.
이곳에 살던 A 양(8)은 출생신고도 없이 살다가 8일경 친엄마에게 목숨을 잃었다. 기본적인 것도 누려 보지 못한 아이에게는 10평 남짓한 집과 인근 골목이 자신에게 허락된 세상의 전부였다.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 주민은 “집에서 온종일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안 가나 보다 했지만 이런 지경일 줄이야…”라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쑥쑥 크잖아요. 어른 허리 이상 오는데, 학교에 안 다닌다고 해서 좀 이상하다 싶었죠. 엄마가 ‘아직 대여섯 살밖에 안 됐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또래보다 말도 좀 느린 편이었어요. 이제 와서 보니 바깥으로 나다니질 못해 친구도 못 사귀었겠구나 싶더라고요.”(미용실 원장 김모 씨)
실제로 A 양은 투명인간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그 나이 때에 필수적인 영·유아 검진이나 의무교육도 받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친모인 백모 씨(44)는 전남편과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B 씨(46)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 2013년 A 양을 낳았다고 한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출생신고는 부모가, 혼외자일 경우 친모가 하도록 규정돼 있다. 원칙적으로 이전 혼인 관계가 정리되지 않았던 백 씨는 전남편과 함께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의지가 있었다면 ‘친생부인의 소’를 진행해 A 양이 B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라는 걸 입증할 수 있다. 다만 법률사무소 지율의 김예진 변호사는 “구청에서는 법률 상담을 해주지 않는 데다 소송 절차가 복잡해 쉽게 접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당국도 A 양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백 씨가 10년간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조사 자체가 되질 않았다고 한다. 2011년부터 미추홀구에 셋방을 얻어 살았던 백 씨의 주소지는 다른 지역으로 등록돼 있다. 미추홀구 관계자는 “1년에 한 번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거주지의 일치 여부를 조사하지만, 신규 전입신고자가 대상자라 신고 자체를 안 할 경우엔 확인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A 양의 안타까운 사연이야말로 ‘출생통보제’가 꼭 필요한 명확한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A 양처럼 가정사로 인해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유미숙 숙명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친부모 신고에 의존하는 현행 출생신고제는 이처럼 부모가 출생 사실을 숨기면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의료기관이 출생을 신고하는 출생통보제로 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도 2019년 5월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 출생통보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지만, 아직 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A 양 부검 결과 ‘부패가 심해 사인을 알 수 없다’는 1차 구두 소견을 보내왔다”고 18일 밝혔다. 딸을 살해한 뒤 시신을 일주일간 집에서 방치한 백 씨는 15일 “아이가 죽었다”며 119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에서 백 씨는 “생계가 어려워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