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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현장에서/조응형]

입력 | 2021-01-19 03:00:00


유보일 주무관이 18일 오전 5시경 차를 멈추고 제설제 살포 장치를 점검하고 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조응형 사회부 기자

서울에 대설 예비특보가 내려졌던 18일 오전 3시 반경.

강서도로사업소에서 제설차량을 운행하는 유보일 주무관(57)은 사무실 의자에서 쪽잠을 자다 뻐근해진 몸을 일으켰다. 전날 오후 9시경 시작한 1차 제설작업을 마치고 들어온 지 3시간쯤 됐을 때였다. 도로보수과의 당직 근무자가 “인천 영종도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며 출동을 준비시켰다.

뒷목을 주무르며 차에 오른 유 주무관은 17일부터 이미 21시간가량 연속 근무하는 중이었다. 서울시가 17일 정오경 제설 1단계를 발령하자마자 사업소로 출근해 집에는 가지도 못했다.

“어디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나요. 눈 올까 봐 계속 걱정도 되고…. 짬짬이 하늘만 원망스레 쳐다볼 뿐이죠.”

이날 서울엔 2∼7cm가량의 눈이 내릴 것으로 예보됐지만, 정작 내린 건 1cm 안팎. 그렇다고 일이 수월해지는 것도 아니다. 제설작업 12년 차인 유 주무관은 새벽녘 행주 나들목(IC) 인근에서 출발해 올림픽대교 상·하행선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작업을 약 2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그는 “오늘처럼 눈이 조금만 내려도 업무량은 비슷하다”며 “날씨가 추우면 도로가 금세 얼어붙어 눈 예보 5cm 이상이면 꼭 제설제를 뿌려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설차량 기사들이 진짜 힘든 건 노동 강도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그들을 대하는 시민들의 차가운 태도다. 실제로 유 주무관을 따라 현장에 갔더니, 제설제를 뿌리는 제설차량을 향해 거칠게 경적을 울리는 이들이 상당했다. 위험천만하게 차로를 바꾸더니 스치듯이 쌩 지나가는 승용차도 있었다.

한 제설차량 기사도 “도로에 골고루 뿌리려면 시속 40∼50km로 서행할 수밖에 없는데 시민들이 굉장히 불쾌해한다”고 아쉬워했다. 한 제설업체 관계자도 “길에 뿌린 제설제가 튀어 차 도색이 벗겨졌다며 물어달라고 항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문제는 적절한 제설제 살포가 이뤄지지 않으면 6일 수도권에서 벌어졌던 ‘퇴근길 대란’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 서울시는 오후 1시 20분경 기상청이 큰눈을 예고했지만, 5시경에야 제설차량을 현장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한 용역업체 관계자는 “투입 자체도 늦었지만 퇴근시간에 차가 몰리면 현장에 갈 수 없다. 늦어도 서너 시간 전에 살포 작업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답답한 도로. 느릿느릿 길을 막는 차를 보면 울화통이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느린 걸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그 묵묵한 노력이 없었을 때, 어떤 상황이 생기는지는 6일 우리 모두가 직접 겪었다. 대비가 미흡했던 당국은 비난하되, 현장에서 고생하는 이들에겐 돌을 던지지 말자. 그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조응형 사회부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