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레돔이 술 탱크 갈이를 하면서 나온 효모를 한가득 들고 왔다. 찰랑이는 우유 바다를 한 바가지 떠온 것 같다. 바야흐로 빵을 구워야 하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지난해 12월에 착즙해 탱크에 들어간 즙이 발효되면서 효모가 엄청나게 나오기 시작했다. 엄동설한에 발효되는 사과술에서 나오는 효모들은 정말 힘이 세다. 이 효모를 밀가루에 넣어 반죽하면 마법처럼 부풀어 오른다.
“올해 효모는 지난해와 성격이 너무 다른 것 같아.” 탱크 갈이를 할 때마다 올해는 어떤 술맛이 나올까 두근거리며 기웃거린다. 내추럴 와인은 매해 조금씩 다른 술맛을 낸다. 그해의 날씨나 밭의 상태에 따라서 과일에 붙어 있는 효모가 달라지고, 이 효모들의 성격에 따라 술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맛의 균일화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정해진 조리법을 가지고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면 가능하다. 그렇지만 참 재미없는 술이다. 빵도 그러하다. 작년에도 사과발효주 빵을 구웠지만 올해는 또 다른 빵맛을 낼 것이다.
“딸 부잣집 효모들 같아. 효모에 성별이 있다면 올해는 딸이 더 많이 태어난 것 같아. 굉장한 말괄량이 아가씨들이 와글와글한 느낌이 드는 술이야.”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니까 정말 효모가 보여요? 효모의 성격을 어떻게 알 수 있죠?” 내가 그냥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저도 옛날엔 몰랐어요, 그런 거.” 나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자기가 경험한 것만 믿는다. 효모가 춤을 춘다고 말하면 그냥 소설가니까 그러는가 보다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빵을 반죽하면 달라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군요. 아, 진짜 신기해요!”
술 찌꺼기만 넣고 휘리릭 한 빵 반죽이 뽁뽁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는 것을 보더니 우리 집 아가씨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 또한 매번 볼 때마다 신기하다. 사과즙을 먹던 존재들이 밀가루 속에 들어가서 밀가루에 붙은 당을 마구 먹으며 방귀를 뀌며 노래를 부르니까 반죽이 가볍게 부풀어 오른다. “아, 제가 예쁘게 성형해서 넣고 싶어요!” 내가 반죽을 대충 잘라 오븐에 넣으려고 하니 아가씨가 안타까워한다. 뭐든지 얼렁뚱땅인 나에 비해 우리 아가씨는 완벽주의자다. 고운 손으로 반죽을 요리조리 예쁘게 매만진다.
“이것 봐라. 아가씨가 조몰락거려서 빵 다 망쳤다.” 오븐에서 나온 빵을 보고 아줌마가 한마디 하자 아가씨가 아쉬운 한숨을 쉬며 깔깔 웃는다. 대충 잘라서 넣은 빵에 비해 예쁘게 만져서 넣은 반죽이 별로 안 부풀었다. 자연 효모들은 좀 예민해서 지나치게 만지면 움츠러들고 만다. 사실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만 사항을 말하지 않으니 알아서 잘해줘야 한다. 똑같은 방법으로 구워도 어떤 날은 빵이 딱딱해져서 나온다. 레돔은 생명역동농법 달력의 꽃과 열매의 날에 구워보라고 한다.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신이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