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北과 협의’ 文발언 비판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1.01.18.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필요하면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18일 신년 기자회견 발언 후폭풍이 군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군 내부에서는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되고 있음에도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핵심 축이자 안보주권에 해당하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 빌미를 북한에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19일 동아일보에 “문 대통령의 발언은 시기나 내용 면에서 한반도 안보 현실을 외면한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당 대회에서 핵미사일을 장착한 전략핵추진잠수함(SSBN)과 대남 핵공격용 전술핵 개발을 공식화했음에도 (군 통수권자가) 선뜻 훈련 중단을 시사한 이유가 납득이 안 간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밝힌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가동된 적이 없어 북한이 호응할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군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군 내부뿐만 아니라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 등 예비역 단체들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방대 총장을 지낸 방효복 성우회 사무총장(예비역 중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군사 대비태세는 진보 보수를 떠나 군사력 향상을 위한 것인데 정치적 판단에 휘둘리고 있다. 예비역 장성들의 우려가 매우 크다”고 전했다.
北, 대화 제의 역이용 우려… 軍안팎 “美전략자산 철수 요구할수도”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 요구에 대해 “필요하면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군 안팎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고 한미관계에도 파열음을 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군사공동위는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에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에 불가침 이행 보장을 위한 군사협의기구로 처음 명시됐다가 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9·19남북군사합의서에 다시 담겼다. 9·19합의에 따르면 군사공동위에선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증강 문제 등이 논의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제안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
군 일각에서는 북한이 군사공동위에 응한다고 해도 대남 공세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의 제안을 역이용해 연합훈련 중단뿐만 아니라 전력증강 중지까지 요구할 수 있다는 것. 군 관계자는 “F-35 스텔스 전투기 같은 북핵 타격 전력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한미 방공망을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로 매도하면서 도입 중단 및 철수를 물고 늘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존 틸럴리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이날 동아일보에 보낸 이메일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한미 연합)훈련은 (대북) 억지력과 한국인들의 안보로 이어지는 군사적 대비태세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한미 연합훈련이 한국인들의 안전에 필수적인 만큼 한국 정부가 북한과 협의를 통해 중단할 성격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과 남침을 막아낼 훈련을 할 것인지를 공격 주체와 협의할 어젠다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자해적 발상”이라며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문제를 민족 공조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은 국군 통수권자가 제정신으론 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안보에 대한 무지와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국방보좌관을 지낸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예비역 중장)은 “(북한에) 허락을 받겠다는 뜻 아니냐”며 “북핵 억제를 위한 연합훈련을 북한과 논의하겠다는 것 자체를 미국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수 야당도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맞는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도 “대통령의 북한바라기가 국제사회에서 외톨이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