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종 파리 특파원
프랑스 외교부 클레망 본 유럽담당 국무장관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불쑥 꺼낸 말이다. 이어 그는 “언어 다양성 회복정책을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은 그의 발언을 두고 ‘언어전쟁이 시작됐다’며 앞다퉈 보도했다.
브렉시트가 올해 1월 1일 단행되면서 영어가 차지하던 ‘EU의 제1공용어’ 위치를 어떤 언어가 이어받느냐를 두고 논쟁이 본격화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해가 된다. 영국이 1973년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했을 당시 프랑스어가 제1공용어였다. 1990년대 들어 영어에 더 익숙한 북유럽, 동유럽 국가들이 EU에 가입하며 상황이 역전됐다. 지난해 EU 공식문서의 초안은 90% 이상이 영어로 작성됐다. 프랑스어 초안은 4%에 불과했다. 1990년대에는 40%에 달했다. 더구나 브렉시트로 인해 EU 27개 회원국 중 영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 중인 나라는 아일랜드와 몰타뿐이다.
독일 역시 자국어를 제1의 EU 공용어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폴리오 등 이탈리아 주요 언론도 “EU에서 떠나길 원한 사람(영국인)의 언어를 고집하는 건 EU의 신뢰를 약화시킨다. 제1공용어를 바꾸자”고 전했다.
그러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논쟁이 ‘비현실적’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학생 미셸 씨는 “해외 취업을 위해 영어 실력을 늘리려는 친구들이 많다”며 “저성장 고실업으로 ‘유럽의 병자(病者)’가 된 프랑스의 국가경쟁력부터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프랑스의 실업률은 8%대로, 독일(3%대)이나 영국(4%대)보다 높다.
같은 맥락에서 ‘프랑스인은 영어를 못한다’는 얘기는 옛말이 되고 있다. EU 조사기관인 유로바로미터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40%가 영어에 능숙하다. 영어능력지수 조사에서도 프랑스는 2017년 31위였지만 지난해엔 28위로 올라왔다.
자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소중하다. 다만 한 국가의 경쟁력이 담보가 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런 차원에서 파리7대학, 국립동양어대 등 프랑스 주요 대학에 설치된 한국학과 경쟁률이 2, 3년 전부터 10 대 1을 넘어선 현실은 우리에게 적잖은 희망으로 다가온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