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화장실에서도 얼굴 보여야 휴지 나와…전 세계 CCTV 54%가 中 설치 철저한 감시·소수민족 탄압 악용…과거와 달리 중국인 거부감도 커
중국의 유명 관광지인 산둥성 타이산산 입구에서 모자를 쓴 관광객이 안면인식 체계를 통해 신분 확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모자를 벗지 않은 채 이 과정을 거쳤다.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이 발달해 모자를 쓴 상태에서도 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사람들은 본인 차례가 되면 관리원에게 신분증을 건네주고 개표구에 설치된 모니터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안면인식 기계가 특정인 얼굴을 인식하고, 이것이 신분증 속 얼굴과 일치해야 입장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입구를 통과하려면 반드시 이 모니터에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안면인식 기술이 생활 전반에 널리 쓰이고 있다. 특히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감시 체계가 전국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것이 세계 최다 폐쇄회로(CC)TV 대수, 사회주의 특유의 강력한 정부 통제와 결합해 중국을 완벽한 ‘빅브러더’ 국가로 만들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개개인의 정보가 부지불식간 수집되는 것에 대한 반발 또한 상당하다.
○ 생활 전반에 널리 퍼진 안면인식 기술
중국 광둥성 둥관시는 공중화장실에 안면인식을 통해 휴지를 공급하는 체계를 도입했다. 바이두 캡처
저장성 항저우(杭州)의 한 실버타운에서도 노인이 음식값을 얼굴로 지불하는 안면인식 결제 체제를 도입했다. 인근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안면인식 기계를 통과하면 체온 정보, 개인고유번호 등이 순식간에 기록된다.
항저우 아파트 단지에서는 안면인식을 적용한 ‘스마트 쓰레기통’도 등장했다. 아파트 주민이 쓰레기통 앞 카메라에 다가가면 자동으로 열리는 방식이다. 신분 확인을 통해 주민들이 버리는 쓰레기의 종류와 무게를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다.
대기업 역시 안면인식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공룡 텐센트는 모바일 게임에 안면인식을 도입했다. 아이들이 부모의 아이디로 게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얼굴 인식을 거치지 않으면 게임을 즐길 수 없다.
상탕커지(商湯科技), 쾅스커지(曠視科技), 이투커지(依圖科技) 등 유명 안면인식 스타트업은 모두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을 뜻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 타이위안·우시에선 10명에 1명꼴로 CCTV 노출
중국 도시 중 CCTV가 가장 많은 곳은 수도 베이징(115만 대)과 경제 중심도시 상하이(100만 대)다. 그러나 인구 1000명당 수로 보면 중부 산시성의 주도 타이위안(太原)과 상하이 인근 장쑤성의 우시(無錫)가 각각 1, 2위를 차지한다. 두 곳은 인구 1000명당 각각119.57대, 92.14대의 CCTV를 보유해 50대 수준인 베이징, 상하이를 압도한다. 즉 주민 10명 중 1명꼴로 CCTV에 노출된다는 의미다.
두 곳에 CCTV가 많은 이유는 각각 다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타이위안은 중국에서도 강력범죄가 많은 곳으로 유명해 당국이 의도적으로 CCTV를 집중적으로 설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시는 장쑤성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로 글로벌 기업을 속속 유치하고 있다. 도시가 급속도로 커지는 과정에서 CCTV 설치 또한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 “내 얼굴 보여주기 싫다” 반발 확산
중국 당국은 안면인식 기술의 편리함과 안전함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안면인식 기술을 포함한 신기술 육성에 10조 위안(약 1667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말까지 CCTV를 6억 대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당국의 주장과 달리 중국인의 불안감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지문, 동선 정보 노출을 넘어 내 얼굴이 공개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중국인이 적지 않다.
궈 교수는 동물원의 연간 이용권을 구매했다. 동물원 측은 타인이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처음엔 지문 정보 등록만 요구했다. 하지만 지문을 통한 신분 확인이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자 최근 안면인식 체계를 도입했다. 동물원은 궈 교수에게도 안면 정보를 요구했지만 지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그는 거부했다. 동물원 역시 궈 교수의 입장을 불허하자 소송을 제기해 이긴 것이다.
지난해 12월 산둥성 지난(濟南)에서는 안면인식을 당하지 않기 위해 헬멧을 쓴 채로 아파트 본보기집을 찾은 남성이 화제에 올랐다. 이 남성이 방문했던 부동산 개발업체는 안면인식 기술로 고객의 얼굴을 식별해 처음 방문한 자리에서 계약한 고객에게만 할인 혜택을 제공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고객이 헬멧을 쓰고 입장한 것이다. 이후 당국은 “아파트 분양 본보기집에서 동의 없이 방문객의 얼굴 정보를 촬영해서는 안 된다”는 긴급통지를 내렸다.
○ 소수민족 탄압에 커지는 우려
더 큰 문제는 안면인식 기술이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에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 사회 역시 이를 우려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12월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등이 오래전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소수민족 위구르족을 감시하는 데 쓰이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시험했다고 폭로했다. WP는 미 영상감시연구소(IPVM)의 내부 문건을 입수해 이 사실을 공개했다.
특히 화웨이는 2018년 쾅스커지와 군중 속에서 특정 인물의 나이, 성별, 인종을 구별할 수 있는 안면인식 기술을 대대적으로 시험했다. 화웨이와 쾅스커지는 해당 문건의 존재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의 활용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중국 대기업이 위구르족 안면인식 기술을 무더기로 개발해 특허 등록을 해놓은 사실도 드러났다. 한족들 사이에서 황백혼혈인 위구르족을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13일 로이터통신은 화웨이 등 중국 IT 대기업이 2017년부터 이 같은 특허를 확보해 왔다고 보도했다.
○ 시진핑 권력 강화 도구 논란
이런 논란은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안면인식 체계의 확산이 권력자의 장기 집권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공안부 주도로 14억 중국인 얼굴을 3초 안에 90% 이상의 정확도로 식별하는 체계를 이미 갖췄다고 보고 있다. 일종의 ‘하이테크 전체주의’ 사회가 도래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의 안면인식 체계 확대는 ‘강력한 권위만이 불안정한 국가에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 이상 고도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빈부격차 확대, 코로나19 등으로 사회 불안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국가가 국민의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데 최첨단 기술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헤지펀드 제왕’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은 일찌감치 이런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2019년 1월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시 주석을 ‘열린사회의 가장 위험한 적’으로 지목했다. 소로스 회장은 “중국이 자국민을 주시하기 위해 얼굴 인식을 포함한 최첨단 AI 체계를 구축했다. 기술을 통해 주민을 감시하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에 이득이 되는 기술일 뿐”이라고 질타했다. 화웨이, ZTE 등 중국 통신사가 세계 5세대(5G) 통신 시장을 장악하면 다른 나라에도 심각한 보안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