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착형 ‘웨어러블 기기’ 장착해 MRI-뇌파검사로 못찾은 원인 발견 심장박동기 삽입시술 통해 해결… 일상서 간단하게 수시로 진단 부정맥 환자들 치료에 활용 가능
몸에 부착해 심장의 상태를 파악하는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국내에서 심장질환이 진단되고 성공적으로 치료받은 첫 환자가 나왔다. 5년 전 뇌동맥류 수술을 받았던 김모 씨(76·여)가 그 주인공이다. 김 씨는 지난해부터 몇 차례 실신을 반복하자 병원 여러 곳에서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뇌파 검사, 정밀 심전도 검사 등을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대목동병원 순환기내과 박준범 교수가 김 씨에게 3일간 부착형 ‘웨어러블 기기’를 장착하도록 처방했다. 가슴 부위에 붙이는 패치 형태로 집에서도 심전도를 계속 찍는 스마트한 장치다. 데이터 분석 결과 부착 3일째 김 할머니가 식사 도중 실신했는데, 당시 8초간 심정지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2019년부터 심전도 측정 가능
최근 웨어러블 기기 처방을 통해 환자 진단과 시술에 성공한 이대목동병원 순환기내과 박준범 교수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한 외래환자에게 웨어러블 기기를 설명하고 있다. 이대목동병원 제공
애플 워치, 갤럭시 워치 등 상용화된 웨어러블 기기는 기존에도 심전도를 측정하는 기능이 있었지만 의료 데이터 관련 규제 때문에 국내에서는 해당 기능이 막힌 채 판매됐다. 하지만 2019년 웨어러블 기기 관련 규제가 ‘샌드박스 1호’로 선정되면서 이를 활용한 심전도 측정이 가능해졌다. 현재 국내에서 나온 심전도 측정 웨어러블 기기는 애플 워치, 갤럭시 워치, 휴이노 등 시계 형태 말고도 반지 형태의 카트원, 지갑에 넣고 다니는 카디오, 패치 형태의 휴이노, 씨어스테크놀로지 모비케어 등이 있다.
이들 웨어러블 기기는 심전도 이외에도 맥압과 맥박 등을 측정해 심장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해 심전도를 측정할 경우 김 씨처럼 동정지 심장의 진단과 치료 골든타임이 중요한 부정맥을 진단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교수는 “기존의 심전도 검사법은 한정된 시간 동안 실시하다 보니 검사가 진행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심장 문제는 발견할 수 없었고 부착 부위에 진물이나 알레르기 등 피부 질환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웨어러블 기기는 사용도 간단하고 무게도 가벼워 일상 속에서 수시로 진단이 가능하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웨어러블 기기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현재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은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심방세동이나 동기능 부전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의료계에선 아직까지 정확한 부정맥 진단에서 기존 병원에서 검사하는 심전도의 정확도가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김동혁 교수는 “현재 출시된 대부분의 웨어러블 기기에 대해선 아직 국내 연구가 부족하고 정확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웨어러블 기기에서 부정맥 신호가 잡힌다고 해서 인공지능(AI)이 바로 부정맥으로 진단할 수 없다. 2020년 유럽심장학회(ESC)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부정맥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심전도에서 30초 이상 부정맥 신호가 잡혀야 하고 반드시 의사가 직접 진단해야 된다.
또 원격검사는 가능하지만 실시간으로 환자의 심전도 데이터를 전송받아 검증하는 원격 모니터링은 현재까지 실시되지 않고 있다. 실시간으로 심전도 데이터가 중앙 서버에 저장되는 기술력은 갖췄지만 관련 법적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만약 의사가 원격 모니터링을 통해 환자의 현재 부정맥 상태를 알게 됐는데도 별도의 조치를 할 수 없는 경우 환자에게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의사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등 각 상황에 대한 법적 책임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며 “향후 데이터 축적 및 관련 논의를 통해 발전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진한 의학전문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