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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수목토토일, 코로나가 앞당긴 ‘주4일제’ [박성민의 더블케어]

입력 | 2021-01-21 09:41:00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에 다니는 윤주은 매니저(29)는 일주일에 사흘을 쉰다. 회사가 2019년 6월부터 ‘드림데이’라는 이름으로 주4일제를 도입하면서다. 팀원들에게 미리 공지만 하면 주중 하루씩 편한 날을 정해 쉴 수 있다. 세 번째 ‘빨간 날’엔 은행이나 관공서 일을 처리한다. 예전엔 엄두도 못 냈던 ‘원 데이 클래스’도 다니고, 최근엔 쉬는 날을 이용해 주식 공부도 시작했다. 윤 씨는 “일할 땐 더욱 집중하게 되고, 쉴 땐 푹 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1년8개월째 주 4일 근무를 하고 있는 에듀윌의 윤주은 매니저. 윤 매니저는 “휴무일에 업무를 대신할 팀원을 명확하게 정해 공백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에듀윌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주4일제’ 논의가 조금씩 움트고 있다. 재택근무와 출퇴근 시간 조정 등으로 근무 조건이 다양해지면서 ‘9 to 6’, ‘주5일제’ 등 기존 근무 방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여행, 면세점, 호텔 등 일부 업종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 “업무 효율 높아져” vs “월급 깎이는 건 반대”
삼성전자와 엔씨소프트 등은 지난해 한시적으로 주4일제를 도입했다. 방역을 위해 회사 내 밀집도를 낮추면서 자녀를 학교나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는 직원들의 육아 부담도 고려한 조치였다.

완벽한 주4일제가 아니더라도 기업들은 다양한 형태로 근무 시간을 줄이고 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월요일 오후에 출근하는 ‘주4.5일제’를 시행 중이다. 금요일 오후가 아니라 월요일 오전에 쉬는 것은 술자리나 가족 돌봄 부담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다. SK는 코로나 이전부터 계열사에 따라 한 달에 하루나 이틀씩 금요일에 쉴 수 있다.

주4일제를 경험한 직장인들의 만족도는 대체로 높다.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장모 씨(36)는 “불필요한 업무가 줄어들고 소통 속도가 빨라졌다”며 “조직이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67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82.7%가 가장 원하는 근무형태로 ‘주4일’을 꼽았다.

물론 긍정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월급을 이전만큼 받을 수 있느냐다.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71.2%는 ‘급여 감소가 우려된다’고 답했다. 호텔업계에 종사하는 정모 씨(37·여)는 “하루를 더 쉬는 만큼 월급이 20% 줄어들었다. 쉴 때도 업무 메일이나 단체 카톡방을 확인해야 한다”며 “차라리 주 5일 일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인건비 감축을 위해 주4일제를 도입한 기업에선 비슷한 불만을 토로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 줄어든 일자리, 불가피한 선택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노동 시간이 가장 짧은 편에 속하는 유럽에서도 주4일제 도입을 원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영국의 데이터분석 기업 YouGov가 2019년 유럽 7개국 87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7%가 주4일제 도입에 찬성했다. 영국 노동당은 2019년 총선에서 주4일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촉발한 경제 위기로 인해 잠시 주춤한 상태지만 팬데믹 이후엔 주4일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지난해 5월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기업들이 주4일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휴식 시간을 늘리면 관광업을 활성화할 수 있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지난해 5월 페이스북을 통해 주4일제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페이스북 화면 캡쳐.

주4일제는 단순히 ‘덜 일하고, 더 쉬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계나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현실도 반영된 결과다. 기술 발달로 업무 효율이 높아져 짧게 일해도 기존의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의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향후 일자리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결국 근무 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일하는 시간 20% 줄어도 생산성은 높아진다?
기업이 주4일제 도입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건 ‘생산성’ 우려 때문이다. 산술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20% 줄어드는데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는 등 근무 효율을 높여 생산성을 높이거나 유지한 사례도 적지 않다. 뉴질랜드 금융기업 퍼페추얼가디언은 2018년 기존 임금을 유지하면서 주4일제를 도입했는데 생산성은 오히려 2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에 헌신한다는 직원의 비율은 68%에서 88%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만족도는 54%에서 78%로 올랐다.

‘과로사회’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장시간 근로 문화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야후 재팬, NEC 등은 가족 돌봄 등 사정이 있는 직원에게 주4일 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2019년 주4일제를 시범 도입한 마이크로소프트 재팬은 업무 생산성이 39.9% 향상됐다.

알렉스 수정 김 방(Alex Soojung-Kim Pang) 스트래티지 앤드 레스트 대표가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주최로 열린 웨비나(웹+세미나)에서 주4일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알렉스 대표는 “업무를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5시간 일하는 것이 10시간 근무보다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화면 캡쳐.

미래학자인 알렉스 수정 김 방 스트래티지 앤드 레스트(Strategy and Rest) 대표가 지난해 출간한 ‘쇼터(SHORTER)’는 주4일제나 하루 6시간미만 근무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기업 1000여 곳을 소개했다. 이들이 업무 효율을 높인 비결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회의 시간과 규모를 줄인다. 회의는 월요일 하루만 하거나 1시간씩 하던 회의를 20분으로 줄이는 방식이다.

둘째, 근무 시간을 리디자인 한다. 가령 하루 3시간의 집중 업무시간, 전화나 이메일 등 협업 및 소통하는 시간, 휴식 시간 등으로 업무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이 밖에도 업무자동화를 위해 사내 인프라를 개선하거나 공간 재배치로 업무 효율성을 높인 사례 등이 소개돼 있다. 그는 “근무 여건을 개선해 직원 퇴사율을 낮추면 신규 채용 및 교육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기업도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 1967시간, 덴마크 1380시간
국내 근로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9년 기준 1967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2137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가장 짧은 덴마크(1380시간)에 비하면 연간 약 73일(하루 8시간 근무 기준)을 더 일하는 셈이다. 주당 5일씩 일한다고 봤을 때 약 14주, 1년 중 석 달을 더 일한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이 주4일제 도입 등 노동시간 단축이 시급한 동시에 해결할 과제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기업은 근무 일수를 줄여도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추가 고용 등 늘어나는 비용 부담은 없을지 따질 수밖에 없다. 영세한 하청기업에겐 근무일수 단축이 아직 먼 얘기로 들린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기본급 대비 각종 수당의 비중이 높은 한국의 기형적인 임금 구조를 고려할 때 일하는 시간이 곧 소득으로 직결되는 노동자들은 근무 일수가 줄어드는 게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는 주4일제로 워라밸 수준을 더욱 높이는데 한쪽에선 여전히 주6일 근무도 감내해야 하는 노동의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통계청

하지만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더 일찍 공론화시켜 미리 준비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줄어든 소득을 노동자들이 얼마나 감수할지, 소득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지원은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할지 등 구체적 실현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독일도 지난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주4일제(주 30시간) 도입을 검토했지만 임금 보상 방안에 이견이 커 논의가 답보 상태다. 독일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보조금 지급 기한을 24개월로 연장하겠다고 밝혔지만, 재계와 학계 일각에선 한시적인 지원은 근본 대책이 아니라고 반대했다.

권 교수는 “주4일제 도입 논의의 핵심은 임금 보전이다. 노사가 서로 양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가령 근무 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인다면, 3시간은 생산성 향상으로, 2시간은 노조가 임금을 양보하는 형태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주4일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주4일제를 주제로 릴레이 토론회를 진행 중인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주4일제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며 “기본급 비중이 낮은 임금구조,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고용보험제도 개편 등 노동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근무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근무 시간을 단축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안처럼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민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