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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세입자 갈등 키운 임대차법… 분쟁 3배로

입력 | 2021-01-22 03:00:00

작년 분쟁위에 155건 접수
임대차법 통과 7월이후 급증
기존 계약까지 일괄 적용해 논란
59%만 합의… 소송전 이어지기도




대전의 한 아파트에 사는 세입자 A 씨는 지난해 9월 전세 계약을 연장하면서 기존 보증금 2억3500만 원의 25%인 6000만 원을 올려줬다. A 씨는 지난해 7월 27일 집주인과 보증금 9500만 원을 높여 재계약했다. 하지만 나흘 뒤 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A 씨는 임대차법대로 기존 보증금의 5%인 1175만 원만 올려주겠다고 하자 집주인은 이에 맞서 본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했다.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분쟁위)는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되 보증금을 6000만 원 높여 재계약하라는 조정안을 내놓았다. 달리 대안이 없었던 A 씨는 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급하게 시행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양측이 조정 결과에 동의하면 다행이지만 조정이 이뤄지지 못해 소송전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조정만으로는 세입자를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21일 지난해 분쟁위에 접수된 임대료 증액 및 계약갱신 관련 조정 건수는 155건으로 2019년(48건)의 3.2배 수준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임대차법 관련 상담 건수는 지난해 1만1589건으로 전년(4696건)의 2배를 넘어섰다. 공단 관계자는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임대차법 관련 상담과 조정 건수는 전년 수준이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지난해 7월 이후부터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분쟁위의 조정으로 소송까지 가지 않고 신속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긴 하지만 강제력이 없다 보니 조정 결과에 불복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조정이 완료된 649건 중 조정이 성립된 건 389건(59%)이다.

조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송으로 가기도 한다. ‘임대료 5% 이내로 재계약할 수 있다’는 정부 말만 믿었다가 세입자가 낭패를 본 경우도 있다. 주택임대사업자인 집주인이 보증금 인상액을 놓고 갈등을 겪던 세입자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최근 법원이 집주인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세입자에게 집주인 요구대로 기존 보증금(5억 원)의 5%가 넘는 3억 원을 올려주라는 조정 결과를 내놓았다. 기존 계약이 있어도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뒤 맺은 첫 번째 계약이 법상 ‘최초 계약’이 되기 때문에 임대료를 5% 넘게 올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세입자는 결국 이 조정을 수용했다.

전월세 가격이 들썩이던 시기 임대차법을 기존 계약에까지 일괄 적용해 ‘갈등의 씨앗’을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임대차법 해설서를 내놓았지만 어디까지나 정부의 유권 해석이라 법원 판단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조정은 법리보다는 원만한 합의에 방점이 찍혀 있다 보니 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임대차법으로 인한 혼란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