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銀의 대한항공 투자합의서 ‘한진칼이 동의한 위원’ 문구 “선수가 심판 뽑는 격” 지적
KDB산업은행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추진하면서 “대한항공의 건전경영 감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만든 ‘경영평가위원회’(경평위)가 위원을 뽑을 때 대한항공 대주주 한진칼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본보가 입수한 산은의 대한항공 투자합의서에는 이런 내용의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평가’ 조항이 담겨 있다.
조항에 따르면 산은은 채권단 임직원, 외부 전문가 등 5인 이상 6인 이내의 경평위를 구성해 대한항공 경영을 평가하기로 했다. 대한항공 경영 실적과 계획 이행 내용 등을 담은 연간 보고서를 작성해 등급(A∼E)을 매긴다. 평가 등급이 E(불량) 또는 2년 연속 D(부진)이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진을 교체하고 2년 연속 A를 받으면 이듬해 경영평가를 면제한다.
또 경영평가를 위한 세부 요소나 평가 기준, 방식, 경영 목표 등을 정할 때 한진칼과 협의해 확정하기로 했다. 대한항공 평가에 대한항공 대주주가 영향력을 미치는 구조다.
산은은 지난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이 대한항공과 조 회장에 대한 특혜라는 지적이 나오자 기자회견을 통해 여러 견제 장치가 있다고 반박했다. 산은은 대한항공 경영 성과가 미흡하면 조 회장과 경영진을 교체할 수 있고 경평위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구체적인 경평위 운영 방식은 공개하지 않았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선수가 심판을 선정하는 셈이다. 엄정한 경영평가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산은은 항공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 한진칼은 경영권이 걸려있다 보니 조율을 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협의’가 필요하다고 한 만큼 한진칼이 반대해도 평가 기준 마련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러나 ‘협의’ 문구 때문에 산은의 경영평가가 부실하게 이뤄진 사례는 없지 않다.
산은 측은 본보 취재에 “경평위 구성은 현재 진행 중이다. 투자합의서에 관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