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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재정은 화수분 아니다”… 정치권 손실보상법에 각세워

입력 | 2021-01-23 03:00:00

丁총리 등 잇달아 법제화 압박하자
SNS에 “누구도 가보지 않은길… 정말 짚어볼 내용 많아” 우려 표시
“내년 나랏빚 1000조 처음 넘어… 곳간지기, 준엄한 의무” 강조도
與 “국민 삶 피폐해지고 난뒤… 곳간만 남는다면 무슨 소용” 난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 손실보상 제도화 논란과 관련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정말 짚어볼 내용이 많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치권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나서 손실보상 제도화를 압박하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나라 곳간지기 역할은 국민께서 요청하시는 준엄한 의무”라며 각을 세웠다.

홍 부총리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자영업자) 영업제한 손실보상에 대한 입법적 제도화는 기재부도 어떤 형태로든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방법은 무엇이고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할지, 소요재원은 얼마일지 짚어보는 건 재정당국의 소명”이라고 밝혔다. 또 “가능한 한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검토하겠지만 재정당국으로서 어려움이 있는 부분, 한계가 있는 부분은 그대로 알리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내놓은 법안에 따르면 자영업자 손실보상 비용은 4개월만 지원해도 98조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홍 부총리는 이날 정치권이 요구하는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도를 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서면서도 국가채무 전망 등을 조목조목 언급하며 재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홍 부총리는 “적자국채 발행이 올해 약 93조5000억 원, 내년에 1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며 “국가채무 총액은 내년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부의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 국가채무는 956조 원에서 내년엔 1077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넘어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7.8%에서 내년엔 약 51%까지 상승할 것으로 추산된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말 국가채무가 660조 원, 국가채무비율은 36%였던 것과 비교하면 빚의 규모와 증가 속도 모두 지나치게 빠르다. 여기에다 자영업 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등이 세워지면 국가채무 1000조 원 시대가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

홍 부총리가 이날 “곳간지기 역할은 기재부의 권리, 권한이 아니라 국민이 요청한 준엄한 의무와 소명”이라며 각을 세웠지만, 결국 정치권에 밀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자영업 손실보상을)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는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의 발언이 나오자 “개혁 저항세력”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라며 제도화를 21일 지시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을 주장했지만 정치권의 압박에 밀려 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했다. 2차 지원금도 불필요하단 입장이었지만 결국 지급됐다.

정치권에서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기재부에 집중포화를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해 12월 홍 부총리에게 “전쟁 중 수술비 아끼는 건 자랑이 아니라 수준 낮은 자린고비 인증”이라고 지적했다. 이달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기재부 공무원을 겨냥해 “게으르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날도 ‘재정 여건’을 강조한 홍 부총리가 십자포화를 맞았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국민의 삶이 피폐해지고 가정이 파탄난 뒤에 곳간만 남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지적했다. 코로나 손실보상법을 발의한 민주당 민병덕 의원도 “지금 국가 빚을 안 지려고 특별히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넘기는 것은 국가의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도 “국가 재정이 화수분이 아니라며 우회적으로 적극적 재정정책을 비판했는데, 대단히 우려되는 시각”이라고 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남건우 / 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