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원, 아파트 지하 배관실서 스티로폼판 깔고 휴식 화장실·세면대도 없어 고무관 끌어와 빨래·용변 해결 "근로 환경 개선 요구하다 재계약 못할까" 속만 끊여
“쉴 공간이 따로 없어 직접 단열재를 가져다 지하실에 휴게 공간을 만들었죠.”
지난 22일 정오께 광주 광산구 모 아파트 지하 1층 배관실.
단지 내 출입문·계단·복도·엘리베이터 등 곳곳을 쓸고 닦으며 청결을 담당하는 미화원에게 ‘쾌적하고 따뜻한’ 휴게 공간은 없었다.
지하 1층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문구가 붙은 철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와 함께 어둠 속에서 천장 배관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이 드러났다.
백열등 전원을 켠 뒤 희미한 불빛을 따라 몇 걸음 옮기자, 기둥과 기둥 사이에 각각 12㎡(4평) 남짓한 공간이 있었고 청소 도구와 생활용품 등이 놓여 있었다.
한 쪽에는 식탁과 냉장고 등 주방용품이 비치된 ‘식사 공간’이 눈에 띄었다. 다른 한쪽에는 출근복을 걸어둔 옷걸이와 몸을 누일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있었다. 바로 옆에는 호스와 물통·밀걸레 등이 세워져 있는 ‘세탁 공간’이 있었다.
미화원들은 이 곳을 ‘휴게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이 곳에서 미화원들은 오후 1시까지 1시간 동안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 시간을 갖는다.
미화원들이 스티로폼 장판을 깔고 벽면에 단열 소재 돗자리를 붙였지만, 사방에서 뚫고 나오는 냉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른바 ‘식당’이라고 불리우는 곳의 위생 상태도 심각했다. 식탁 옆 벽면에는 곰팡이가 슬었고, 천장을 지나는 배관에 수북이 쌓인 먼지 사이로 벌레들이 지나갔다.
세탁 공간에는 천장 배관과 연결된 고무관이 전부였다. 수도 밸브를 열어 업무 중 사용한 손걸레·대걸레에 물을 뿌린 뒤 쪼그려 앉아 빨래를 해야만 했다. 빨래 중인 한 미화원은 수 차례 일어서서 허리를 두드리기도 했다.
화장실도 열악했다. ‘휴게 공간’에서 50m가량 떨어진 관리사무소에 화장실이 있지만, 하루에 100~150가구(2~3개동)의 청소 할당량을 채우려면 이동 시간까지 줄여야 하는 처지다.
같은날 또다른 광주 모 아파트 내 미화원 휴게 공간도 사정은 비슷했다. 1층 엘리베이터 옆 높이 1m가량의 작은 문을 열자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모습을 드러났다.
5m가량 안으로 들어가자 구조물 사이 약 10㎡(3평) 공간에 건조대가 눈에 띄었다. 건조대에는 걸레, 장화 등이 걸려있어 ‘휴게실’임을 짐작케 했다. 조그마한 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왔지만, 지하의 음산한 기운이 곳곳에 감돌았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 사람 1명이 간신히 몸을 누일 수 있는 면적의 스티로폼 단열재 4~5개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매트리스’ 역할을 하는 단열재 위에는 담요와 간이 전기 장판이 있었다.
바로 옆 공간에는 천장 배관과 연결된 고무관을 통해 찬물이 나왔고, 샴푸와 바디워시 등이 놓여 있었다. 미화원들이 업무 이후 땀을 씻어내는 샤워실인 셈이다.
60대 여성 미화원 A씨는 “겨울엔 추위에, 여름엔 코를 찌르는 곰팡내가 나는 지하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큰 소원이 아니다. 사람답게 볕 드는 방에서 점심 먹고 잠시 쉬길 바란다”고 한숨을 쉬었다.
‘계약직’ 신분에 처우 개선 요구를 할 수 없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50대 여성 미화원 B씨는 “미화원 대부분이 용역업체와 1년 단위 계약을 맺는다. 관리사무소·아파트 주민자치회·용역업체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고 이른바 ‘모범미화원’이 돼야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면 고용 연장이 불투명해질까 걱정돼 묵묵히 일만 한다”고 말했다.
정찬호 광주시 비정규직지원센터장은 24일 “미화원, 경비원, 관리사무소 등 아파트 관리 종사자를 포괄하는 지원 조례 입법을 시 의회와 시 주무부서와 협의하고 있다. 열악한 노동 여건에서 일하는 이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인력·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수원시 주택 조례 제6조에는 ‘100세대 이상 주택 단지는 청소·경비 노동자가 사용할 수 있는 세면 시설 등 위생 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광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