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전설적인 홈런왕 행크 에런이 87세 일기로 별세했다. MLB.com은 23일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에런이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고인이 현역시절 대부분을 보냈던 애틀랜타 구단도 “에런이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에런은 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을 공개하는 등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당시 “백신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 백신을 앞장서서 맞는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1934년 미국 앨라배마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야구 장비를 제대로 구입하지 못해 막대기와 병마개 등으로 타격 연습을 하며 야구 선수 꿈을 키웠다. 1952년 애틀랜타의 전신인 보스턴 브레이브스와 계약한 고인은 팀이 밀워키로 연고지를 옮긴 후 1954년 MLB에 데뷔했다.
하지만 영광만큼 아픔도 많았다. 그가 때린 홈런 숫자가 백인들의 우상인 베이브 루스(1895~1948)의 기록(714개)에 근접하자 그는 극심한 모욕과 협박에 시달렸다. 연방우체국에 따르면 1974시즌을 앞두고 그의 집에 배송된 협박 편지가 100만 통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고인은 1974년 4월 8일 LA 다저스전에서 통산 715호 째 홈런을 치며 MLB의 홈런왕의 자리에 올랐다.
1976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고인이 기록한 755개의 홈런은 그 후 31년 간 깨지지 않았다. 2007년 배리 본즈(57·전 샌프란시스코)가 고인의 기록을 넘어선 뒤 그해 76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은퇴했는데, 과거에 금지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의미가 퇴색됐다. 본즈는 은퇴 후 14년 동안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야구 팬들이 에런을 ‘진짜 홈런왕’으로 여긴다.
고인은 한국과의 인연도 적지 않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 삼성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아 삼성 선수단에 타격 지도를 했고, 리그 운영에 관한 조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이만수(당시 삼성), 윤동균(당시 OB)등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들과 홈런 대결 이벤트를 펼치고 판문점을 찾아 장병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당시 고인은 “훈련 외에 홈런왕이 된 특별한 비결이 없다”는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각계각층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성명을 통해 “내가 그를 진정 존경하는 점은 그가 베이스를 돌 때마다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편견을 깨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줬다는 것”이라며 에런의 용기와 위엄에 존경을 표했다. 본즈 역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당신은 선구자였다. 아프리카계 미국 선수들은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꿈을 꿀 수 있었다. 우리 모두 당신이 그리울 것”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