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영상 확보한 택시기사… 경찰에 보여줬지만 “못본걸로” 李차관 특가법 적용 않고 불입건 경찰, 뒤늦게 진상조사단 꾸리고 거짓말한 수사관 대기발령 조치 李 “영상은 실체 판단할 근거… 수사기관에 제출된 것은 다행”
21일 오후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퇴근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2월 28일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택시기사 A 씨를 폭행한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 중 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폭행 당시 영상이 없어 진상 파악이 안 되고, A 씨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경찰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형법을 적용해 이 차관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A 씨가 경찰에게 영상을 보여줬고 블랙박스 업체도 경찰에게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으로 24일 밝혀졌다. 경찰은 이 차관 사건을 담당한 서울 서초경찰서 B 경사가 거짓말을 했다며 대기발령 조치하고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내사종결 과정을 재조사하고 있다.
○ 경찰, 폭행 영상 직접 보고도 다음 날 내사종결
내사종결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 11일 B 경사는 경찰서를 방문한 A 씨가 블랙박스 업체에서 휴대전화로 촬영한 30초 분량의 영상을 직접 봤다. A 씨는 폭행 사건 발생 당일인 11월 6일 파출소 조사에서 영상이 재생되지 않자 다음 날 서울 성동구의 한 블랙박스 업체를 방문해 SD카드를 건네 영상을 확인했다. 이 차관이 A 씨의 목덜미를 잡고 폭행하며 욕설을 하는 내용의 영상이 나왔고 A 씨는 이를 자신의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B 경사는 해당 영상을 보고 “블랙박스 영상은 못 본 걸로 하겠다”고 말했고 그 다음 날 이 차관을 내사종결했다.
하지만 경찰이 특가법상 ‘운전 중 폭행’ 혐의를 적용했다면 이 차관에 대한 처분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특가법은 피해자의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를 해야 한다. 특히 영상 내용이나 영상이 찍힌 시간 등을 역추적하면 택시가 일반도로를 주행 중이었는지 등 결정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A 씨가 B 경사에게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줬다고 주장한 23일 경찰은 B 경사를 감찰했고,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당시 서초경찰서의 지휘 라인 등까지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79일 만이다.
○ “영상 있다” 말 들은 다음 날 서장이 내사종결 승인
○ 이 차관 “블랙박스 영상 지워 달라” 제안
이 차관은 사건 발생 당일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합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1월 7일 이 차관은 A 씨에게 사과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통화가 끝난 뒤 A 씨는 반성하라는 의미로 자신이 찍은 영상을 이 차관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 차관은 해당 영상을 본 후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 A 씨 자택 근처에서 A 씨를 만나 합의한 이 차관은 “영상을 지우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A 씨는 “지우지 않겠다. 그 대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검찰은 A 씨가 삭제한 영상을 최근 복원했으며, 블랙박스 업체 관계자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이 차관은 “블랙박스 영상은 이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며, 어떤 경위에서건 수사기관에 제출된 것은 다행”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조응형 yesbro@donga.com·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