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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생은 서른부터, 롯데 이인복 “앞으로 인생시즌”[김배중 기자의 핫코너]

입력 | 2021-01-25 16:14:00


“앞에 ‘1’이 빠진 것 같아서 어색했어요.”

2020시즌을 돌아보던 롯데 투수 이인복(30)은 자신의 평균자책점을 생각하다 허허 웃었다. 2014년 1군에 데뷔하고 세 시즌(2014~2015, 2019시즌) 동안 10점대 평균자책점(15.43, 10.18, 11.68)을 기록하며 고개를 숙였던 그는 지난시즌 처음 앞에 ‘1’이 없는 평균자책점 3.97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데뷔 후 가장 많은 경기(47)를 출전하며 가장 많은 이닝(45와 3분의 1이닝)을 소화했음에도 말이다. 데뷔 후 첫 승리(1승 4패 2홀드)도 경험한 한해였다. 이인복은 “결과 자체만으로 많은 동기부여가 된 시즌”이라고 돌아봤다.

2020시즌 롯데 불펜의 주축으로 활약한 이인복. 롯데 제공



세는 나이 ‘서른’에 받아든 결과물. 2014년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0순위로 롯데에 지명된 이인복은 대졸 신인으로 고졸 동기생보다 4년 늦게 프로에 입단했고 군 복무 등을 하며 순식간에 20대를 흘려보냈다. 스스로도 “한 게 없는데 시간이 금방 흘렀다”고 혹평할 정도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느낀 감정은 있었단다. 위기의식. 이인복은 “어릴 때는 올해 못 하면 내년에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을 나도, 주변에서 같이 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지나가니 이 ‘다음에’를 얘기하는 사람이 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다시 1군 마운드에 오른 2019년, 또 10점대 평균자책점(11.68) 성적표를 받아든 뒤 이인복은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시즌이 끝나고 팀의 젊은 선수들과 함께 호주프로야구리그(ABL)로 향했다. KBO리그가 비 시즌일 때 약 3개월 동안 시즌을 치르는 ABL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기 전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마이너리그 선수들까지 이곳을 찾아 국내에서 ‘일본 교육리그’를 대체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질롱코리아 유니폼을 입었던 이인복은 부상으로 리그 후반 경기에 못 나섰지만 인구 15만 남짓의 조용한 도시에서 야구 생각만 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단다.

“제 공이 빨라봐야 시속 147km 정도가 나오는데 너무 세게만 던지려고 했던 것 같아요. 투수라면 당연히 완급조절도 필요한데 말이죠(웃음).”

프로야구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이인복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2019년 143.2km에서 2020년 140.9km로 2.3km 느려졌다. 다른 투수라면 부상 또는 ‘에이징 커브’(나이에 따른 노쇠화)를 의심해볼만 하다. 하지만 이인복에게는 ‘힘을 빼고 좀 더 여유롭게’ 던졌다는 증거다. 9이닝 당 볼넷 비율은 5.84(2019년)에서 2.38(2020년)로 확 줄었고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도 데뷔 후 처음으로 플러스(0.94)로 바뀌었다. 구속을 내려놓고 얻은 게 많았던 셈이다.

‘평균자책점 3점대 투수’라는 ‘인생 계기’를 마련한 뒤 맞은 비 시즌의 목표는 단점을 하나씩 지워가는 것이다. 한 시즌을 온전히 치를 탄탄한 체력 다지기와 새 구종을 추가를 이번 목표로 삼았다. 체력 문제로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성적이 나빠졌고 투심 패스트볼 일변도의 승부가 상대에게 읽힌 것 같아서다. 경기 성남에 부모님이 있어 매년 겨울을 서울·경기에서 지냈던 그는 지난시즌이 끝난 직후인 12월 초 짐을 싸서 부산으로 향했다. 소속팀 안방인 부산 사직구장 웨이트 훈련장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부산 사직구장 웨이트 훈련장에서 근력 훈련을 하고 있는 이인복. 롯데 제공


“지난해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도 잘 하면 그만큼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올 시즌에는 평소 제 목표였던 ‘50경기 이상 출전 50이닝 이상 투구’를 달성하고 싶어요. 좋았던 숫자들은 물론 더 좋게 만들고 싶고요.”

지난시즌 이후 롯데는 장원삼, 고효준(이상 38) 등 베테랑 투수들을 정리했다. 롯데에서만 109승(롯데 최다승 2위·1위는 윤학길의 117승)을 거두며 마운드를 든든히 지켜온 송승준(41)도 플레잉 코치로 선임되며 사실상 은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인복을 비롯해 김원중(28), 구승민(31) 등 지난시즌 나란히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30대 전후 ‘중추’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30대’의 저는 이제 다를 거예요. 앞으로 매 시즌이 제 ‘인생시즌’이 될 겁니다.”

이인복의 선하고 수줍기만 해보였던 눈매가 마운드에서 타자를 노려보듯 순간 반짝였다.

김배중 기자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