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수교 30주년 맞아 ‘항전관’ 추진 대일 관계 고려해 美활동 아우르는 ‘국제관’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역사학자 출신’ 첫 관장된 한시준 “김구-장제스 회동 등 투쟁사 조명”
25일 한시준 신임 독립기념관장이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겨레의집 앞에서 취임 포부를 밝히고 있다(왼쪽 사진). 한 관장은 카이로회담을 앞둔 1943년 7월 백범과 장제스(오른쪽 사진 왼쪽부터)의 회동 사실을 밝히는 등 일제에 맞선 한중의 공동항쟁사 연구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천안=김동주 기자 zoo@donga.com·동아일보DB
보훈처 산하 독립기념관장에 독립투사 후손 중 명망가가 임명돼온 인사 관행을 깨고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정통 학자가 처음으로 임명됐다. 이에 따라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 안에 ‘한중 공동항전 기념관’을 신설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독립기념관은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명예교수(67)가 12대 관장에 취임했다고 25일 밝혔다. 임기는 3년이다. 한 신임 관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연구에서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1993년 발표한 학술서 ‘한국광복군 연구’(일조각)는 국내 학계에서 처음으로 광복군 출신 생존자 인터뷰와 미발굴 사료를 집대성해 광복군의 역사적 실체를 밝혀낸 역작으로 꼽힌다. 한중 수교가 이뤄지기 전인 1991년 중국 충칭(重慶) 상하이(上海) 시안(西安) 등을 20일간 답사하며 잊혀진 광복군의 흔적을 쫓았다. 광복군이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미국 OSS(CIA 전신)와 군사훈련을 벌인 중국 시안 내 장소를 밝혀낸 것도 그의 연구 성과다.
한 관장은 취임을 앞두고 경기 용인시 단국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기념관 내 전시관 8개 중 1개를 ‘한중 공동항전 기념관’으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 1943년 카이로회담에 앞서 백범 김구와 장제스(蔣介石)가 회동한 내용 등 일제에 맞서 한중이 공동으로 투쟁한 역사기록을 조명하겠다는 것. 한중 우호관계의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는 한편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람객을 기념관으로 유치하려는 포석이다. 다만 대일 관계 등에 부담이 될 가능성을 감안해 미국 OSS의 광복군 지원 내용 등을 추가해 ‘국제관’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 관장은 당시 국민당 정부의 회의일지를 입수해 카이로회담을 앞둔 1943년 7월 26일 백범이 장제스와 만나 한국 독립이 회담에서 다뤄지도록 요청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후 장제스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 독립을 관철해 그해 11월 카이로회담에서 한국 독립 문구가 선언문에 포함됐다. 한 관장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 독립을 보장받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했던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불굴의 정신을 해외에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문재인 정부가 2019년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1919년 4월 13일에서 11일로 바로잡은 것도 한 관장의 연구 성과에 힘입은 것이다. 한 관장은 1945년 임시의정원 회의록 등을 발굴해 임시정부 수립일이 4월 11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존 4월 13일은 일본 경찰의 내부 문건에 적힌 부정확한 내용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한 관장은 건국절 논란 당시 광복 이후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정하는 건 옳지 않으며, 임시정부 법통을 이어야 한다는 역사학계의 주장을 대표하기도 했다.
용인=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