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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열흘의 고민이 시작됐다[오늘과 내일/길진균]

입력 | 2021-01-26 03:00:00

2단계 경선 통한 단일화 전례 거의 없어
5일, 국민의힘 본경선 출발 前 결단 주목




길진균 정치부장

지난해 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측은 ‘새해 인사’를 명분 삼아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서울 자택을 예고 없이 찾아가는 방안을 검토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절박감이 깔려 있었다. 문전박대를 각오했다. 고민 끝에 계획을 변경한 안 대표는 1월 6일 서울 모처에서 김 위원장과 독대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에 입당할 게 아니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동은 20분 만에 끝났다.

김 위원장과 안 대표 간 신경전은 이후 진행형이다.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통합 경선을 공개 제안한 이후 더욱 격해졌다. 안 대표가 “공당의 대표에게 입당하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하면, 김 위원장은 “그럼 공당의 대표가 다른 당에서 실시하는 경선에 무소속으로 이름을 걸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에 맞는 얘기냐”고 맞선다.

김 위원장은 ‘선(先)입당’ 방침에서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그는 “국민의힘은 내년 대선까지 준비해야 하는 정당”이라고 했다. 4월 선거를 넘어 내년 3월 대선까지 내다봐야 한다는 뜻이다. 당 대표로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후보를 뺏길 경우 뒤따를 지지층 이탈과 보수 재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안 대표가 입당 없이 야권 대표 후보가 되면 선거를 이겨도 이어지는 대선 국면에서 국민의힘은 그 역할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 데이터도 중요하다. 김 위원장은 안 대표 지지율에 반영된 여권 지지층을 ‘거품’으로 본다. 동아일보가 서울시민 8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더불어민주당 혹은 열린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응답자들은 안 대표를 나경원 전 의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게 지지했다. 이들은 결국 여권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얘기다.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줄곧 뒤졌던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가 선거 결과 당시 안 후보보다 약 19만 표를 더 받았던 점도 그 근거로 꼽힌다.

김 위원장이 꿈쩍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다. 국민의힘은 예비경선과 본경선을 거쳐 3월 4일 서울시장 후보를 최종 결정한다. 이후 단일화 논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경선으로 선출된 후보가 협상을 통해 후보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속설이다. 조직된 지지층의 기대를 저버리는 건 정당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가 안 후보에게 끝까지 ‘양보해 달라’며 내세운 논리 중 하나도 “지지층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였다. 안 대표도 김 위원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안 대표는 최근 “3월에 단일화 협상을 시작하면 단일 후보를 못 뽑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안 대표는 2월 내내 홀로 뛰어야 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경선이 주목받기 시작하면 거대 양당의 싸움 속에 소외될 가능성도 있다. 단일화 논의가 3월 시작됐을 때 안 대표 지지율이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지 못할 경우 입지는 지금보다 더 좁아진다.

연패에 빠진 보수야권엔 벼랑 끝 결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단일화 실패 후 여당에 또 패배한다면 김 위원장도 안 대표도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 선택지는 국민의힘이 안 대표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거나 안 대표가 ‘합당’ 또는 ‘입당’을 결단하거나 둘 중 하나다. 데드라인은 국민의힘이 본경선 후보 4명을 확정하는 다음 달 5일까지다. 안 대표와 김 위원장이 극적인 정치적 결단을 통해 안 대표와 국민의힘 후보들이 참여하는 ‘원샷’ 경선을 합의해 낼 수 있을까. 남은 열흘이 4월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1차 변곡점이 될 것이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