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號 출범 아시아 전략 재정립 시점 다급한 한국 8년 재집권 내다보는 미국 美 경청할 남북협력 북-미협상 로드맵 필요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 빼앗기기만 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국가들은 바이든 정부에 줄을 대어 미국 활용 경쟁에 뛰어들 것이다. 대외 전략에서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중국이며 파트너를 평가하는 최대의 기준도 대중 전략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인준청문회에서 트럼프 정부의 대중 정책이 방법은 잘못되었지만 목표는 올바른 것이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의 연속성이 있는 유일한 분야가 대중 정책이라는 말이 틀린 평가는 아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렸지만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는 줄었지만 전체 무역 적자는 늘었다. 블링컨 지명자는 북핵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상황이 오히려 악화됐다고 했지만 이는 정작 중국 문제에 적용되는 말이다.
국제정치 환경이 바뀌면서 한미 간에 감정적 신뢰가 기능적 신뢰로 대체되고 있다면 결국 전략적 이익을 둘러싼 신뢰가 형성될 수 있는가가 미래 관계의 핵심이다. 공유된 이익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행동이 예측 가능할 때 신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묻겠지만 우리는 아시아로 대답해야 한다. 한국이 원하는 아시아 질서는 무엇이고 미국의 전략과 일치하는가. 한국 대중 전략의 핵심은 무엇이며 미국과 공유되는 부분이 있는가.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오면 한국과 미국이 각각 얻는 것은 무엇인가.
아시아를 놓고 한미가 전략적 신뢰를 구축한다면 북핵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망은 밝아진다. 북핵 문제에서 의견 차가 있어도 조정된 아시아 전략을 놓고 큰 틀에서 서로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를 두고 바이든 정부가 하는 고민이 반드시 한국과 같진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에 북핵은 한반도를 넘어선 문제이다. 항간에 북한이 8차 당 대회를 통해 제시한 화려한 핵무기 리스트를 놓고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 핵 국가로 인정하고 핵 군축 회담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이러한 노선 변경은 극히 어렵다. 북한의 핵무장은 결국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중국의 핵 증강이라는 연쇄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놓고 군축방식을 중간 단계에서 채택할 수는 있지만 전통적인 핵 국가 간 군축일 수는 없다.
먼 길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급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재집권을 포함한 8년의 장정을 기획하고 있을 민주당 정부는 긴 관점에서 전략적 목적을 정비하고 있다. 북핵 문제도 그중 하나다. 우리 현 정부는 5년 임기의 유산을 남기는 1년 남짓만을 남겨두고 있어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당장 북-미 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으로 돌파구를 열었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하겠지만, 남북미 모두가 천천히 신뢰를 쌓아 돌이킬 수 없는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북핵 문제를 미중 간 협력 이슈로 안착시키고,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 및 북한의 체제 보장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일신하고, 남북 협력과 북-미 협상이 선순환할 수 있는 로드맵을 확인해야 하며, 무엇보다 아시아의 미래를 놓고 미국이 경청할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한국이 바이든 정부에 제시할 당장의 정책 목표들이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