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7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장 모습. 동아일보DB
김지현 정치부 차장
“많은 기업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상당한 매출 성장을 이뤘지만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자액은 저조하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2019년 매출액 15조 원 이상을 기록했지만 0.00001%보다도 적은 100만 원만을 출자했다. 이는 제도의 취지를 우롱하고 조롱하는 처사다.”
이날 여야 의원들은 주요 대기업 경영진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면전에서 ‘자발적 참여’를 촉구하기로 했다가 “팔 비틀기”라는 지적 속에 막판 철회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이때뿐만이 아니다. 20대 국회에서도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목표치를 채우지 못했다며 국감 때마다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불러들이자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오죽하면 당내에서도 ‘미르재단’을 그새 잊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고도 했다.
새해 벽두부터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제안한 이익공유제에 재계가 또 한 번 발칵 뒤집힌 건 이런 정치권의 과거 전력 때문이다. 물론 이 대표가 처음 이 말을 꺼낸 배경에는 ‘선의’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이 대표는 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로) 많은 이득을 얻는 계층, 업종이 이익을 일부 사회에 기여해 피해가 큰 쪽을 돕는 방식은 도입할 만하다”며 “일부 선진국이 도입한 이익공유제를 강제한다기보다는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했다. 선의를 토대로 한 자발성을 강조한 것.
하지만 이틀 뒤 당내 ‘포스트 코로나 불평등 해소 태스크포스(TF)’가 출범하고, 정치인들이 한 사람씩 숟가락을 얹기 시작하면서 논의의 흐름은 빠르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TF 단장을 맡은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 SK그룹을 직접 언급했다. “SK처럼 대기업이나 일부 금융 쪽에서 펀드를 구성해 중소기업 등 어려운 계층에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사업 기획을 고민하고 있다”는 그의 발언에 민주당 주요 의원실마다 기류라도 파악하려는 대기업 대관 담당자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 뒤로도 일주일 내내 모호한 이익공유제를 둘러싸고 기금 조성과 부유세 신설 등 각종 방안이 여권 안팎에서 쏟아졌다. 그리고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으로 모든 것은 단박에 정리됐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속에서 오히려 돈을 버는 기업들이 출연해 기금을 만들어 취약계층을 도울 수 있다면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했다. ‘기금 조성’을 콕 집은 대통령의 말에 민주당도 부랴부랴 따라갔다. 민주당 TF는 정부가 일부 출연하고 민간의 자발적 기부로 상당 부분을 충당하는 기금 조성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이날 모범 사례로 소개했던 농어촌상생협력기금과 똑같은 방식이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