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대표 성추행 사퇴] ‘黨대표가 의원 성추행’ 초유의 사건… 정의당 게시판엔 “차라리 해체하라” 탈당 선언 몰려 창당 이래 최대위기 4월 보궐선거 앞둔 민주당도 性인식 이슈 다시 불거질까 긴장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오른쪽)와 장혜영 의원이 4일 국회에서 열린 당 대표단 회의에 참석해 있다. 김 전 대표는 장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25일 당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어떻게 정의당에서조차 이런 일이….”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가 25일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전격 사퇴하면서 정의당은 물론 여권과 진보 진영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그동안 정의당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인사들의 성 비위 사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왔기 때문에 파장도 그만큼 더 컸다.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진보 진영에서 또다시 ‘권력형 성추행’ 사건이 터지면서 진보 진영의 도덕성 전반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다.
○ 정의당 뛰어넘어 진보 진영 전체가 휘청
정의당은 이날 오전 비공개 긴급 대표단 회의를 열고 김 전 대표에 대한 직위해제와 당 징계위원회 제소를 결정했다. 당 젠더인권본부장으로 이번 사안을 조사해 온 배복주 부대표는 회의 후 기자회견을 열고 “다툼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성추행 사건”이라며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추가 조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워낙 극비리에 조사가 이뤄진 탓에 정의당 대표단조차 김 전 대표의 성추행 사실을 전날 오후 긴급회의에서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파문이 정의당을 뛰어넘어 진보 진영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진보가 보수와 차별화할 수 있는 핵심 가치는 도덕적 우위인데, 이른바 ‘범(汎)진보 진영’이라고 불리는 민주당과 정의당에서 이어진 성추문으로 그 우위마저도 잃게 됐다”며 “국민들에게 ‘진보도 별다를 바 없다’고 비춰질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진보 성향 지지층은 물론이고 중도층마저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진보 세력의 윤리적 파탄을 보여주는 사태”라며 “안 전 지사 사태 이후에도 경각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오 전 시장, 박 전 시장 사태가 터진 것이고 이번 김 전 대표 사태까지 보면 한국 사회의 진보 세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4월 보선 앞두고 민주당도 긴장
또 앞선 진보 진영 성추문 때문에 4월에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이번 성추문 사태가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당은 그동안 민주당을 향해 “성추행 귀책사유가 있는 만큼 후보를 내면 안 된다”고 공세를 펴왔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정치의 아주 기본적인 것이 신뢰이고 소위 말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안 된다”며 “(민주당은) 자신들의 당헌·당규에 따라 후보들을 내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민주당도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오 전 시장과 박 전 시장 파문을 간신히 딛고 4월 보궐선거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었지만, 김 전 대표 파문으로 인해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성과 성(性) 인식이 다시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이번 사태가 유권자들에게 보궐선거의 귀책사유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며 “최근 조금씩 민주당에 너그러워지던 민심이 다시 확 돌아서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박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