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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확 바뀐 바이든 美대통령의 집무실

입력 | 2021-01-27 03:00:00


19세기 중반 영국 선박 ‘HMS 레졸루트’호가 북극에서 실종됐습니다. 나중에 미국이 이를 찾아 영국에 돌려줍니다. 영국은 이 배의 목재를 이용해 만든 멋진 책상을 미국에 선물하며 감사를 전합니다. 1880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미국 19대 대통령 러더퍼드 헤이스에게 이 책상을 보낸 것이죠. 이 책상이 바로 미국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 놓인 ‘결단의 책상(Resolute Desk)’입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이곳에 앉아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곤 했습니다.

20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제46대 미국 대통령(사진)이 취임하면서 결단의 책상은 새 주인을 맞았습니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은 백악관 웨스트윙에 있습니다. ‘타원형 집무실’이라는 뜻의 오벌 오피스라고도 부릅니다. 결단의 책상을 비롯해 책상 뒤 창가에 놓인 성조기와 대통령기, 천장의 대통령 문장, 대리석 벽난로 선반 등은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 밖의 장식은 대통령마다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 꾸밉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벌 오피스를 완전히 새로 꾸몄습니다. 결단의 책상 정면 벽난로 위 중앙 벽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걸었습니다.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초상화를 걸었던 곳입니다. 루스벨트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등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을 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힙니다.

루스벨트 초상화 좌우로는 토머스 제퍼슨과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의 초상화를 걸었습니다. 트럼프가 책상 근처에 걸었던 앤드루 잭슨 제7대 대통령의 초상화는 과학자이자 정치가인 벤저민 프랭클린 초상화로 교체됐습니다. 잭슨은 노예제를 옹호한 인물입니다. 인종차별 반대와 과학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등장과 퇴장을 되풀이하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두상(頭像)은 이번에 집무실에서 사라졌습니다. 2001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주미 영국대사로부터 받은 이 두상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철수됐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 때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 대신 바이든은 결단의 책상 좌우로 흑인해방운동가 마틴 루서 킹과 라틴계 노동운동가 세자르 차베스 흉상을 배치했습니다. 인권과 통합을 강조하는 철학이 묻어납니다. 그 밖에 오벌 오피스에는 로버트 F 케네디, 여성 인권운동 지도자 로사 파크스와 엘리너 루스벨트의 조각상도 놓였습니다. ‘하나 된 미국’을 실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이자 흑인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와 함께 출범한 바이든 정부의 성향과 일치합니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와 국력을 과시하고자 창가에 세워뒀던 육·해군 등 각종 깃발도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말을 탄 아파치 원주민 조각상과 가족사진이 책상 뒤에 배치됐습니다. 트럼프가 콜라를 주문할 때 사용했던 책상 위의 ‘콜라 버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각종 결재 서류와 만년필이 놓였습니다.

오벌 오피스를 통해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신념과 가치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첫걸음을 내디딘 바이든의 행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습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