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경제가 22년 만에 처음 ―1%의 역성장을 했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부진한 수치다. 3만2115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도 3만1000달러대로 내려앉았다. 그런데도 청와대 대변인은 “국내외 주요 기관의 전망치 및 시장 기대치를 예상보다 뛰어넘는 수치이며 경제 규모 10위권 내 선진국들이 3∼8% 이상 역성장이 예상되는 것에 비하면 최상위권의 성장 실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크게 하락하고 가장 성장률이 높은 중국도 전년 6%에서 작년 2.3%로 3.7%포인트 낮아졌는데 한국은 하락 폭이 작았다는 자랑인 셈이다. 민간이 ―2.0%포인트 깎아내린 성장률을 정부가 재정으로 1%포인트 벌충해 ―1%로 막은 대목에 대해서도 정부여당은 뿌듯해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 하락 폭이 작았던 것은 ‘준비된’ 민간 부문이 신속히 대처해 피해를 최소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언택트(비대면) 트렌드’를 타고 고화질 TV 등 가전제품 수출이 급증했고, 바이오 업체들은 코로나 진단키트를 개발해 전 세계에 공급했다. 세계적 수준의 택배시스템 덕에 늘어난 온라인 쇼핑이 소비 위축을 방어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반도체 기업들이 공격적 투자에 나서면서 설비투자가 6.8%나 늘어난 덕도 컸다. 정부의 적극 재정이 성장률 하락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그로 인해 국가채무 또한 큰 폭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경제가 큰 폭으로 반등하지 않으면 재정지출은 다음 세대에 큰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에 이미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2019년 성장률 2.0%는 글로벌 금융위기, 외환위기, 2차 오일쇼크 때를 빼면 역대 최저다. 2% 이하 저성장을 2년 연속 경험하는 것은 건국 이후 처음이다. 우리는 지금 ‘지속적인 성장’과 ‘저성장 고착화’의 첨예한 갈림길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성장이 정체되면 갈수록 늘어나는 복지비용과 국가채무를 감당할 방법이 없게 된다. 비상한 위기의식을 갖고 경제성장 엔진을 재가동하는 데 온 힘을 모아야 한다. 옹색한 위안거리를 찾아서 스스로 대견하다고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