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후원금을 감사비로 써야할판… 공익법인 회계교육부터 지원을”

입력 | 2021-01-27 03:00:00

[NGO & ESG]
내년 도입 ‘감사인 지정’ 우려 목소리




지난해 발생한 정의기억연대 부실 회계 논란은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에 대한 신뢰를 크게 무너뜨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실한 공익법인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졌다. 지난해 1월부터 외부 감사를 받는 공익법인 대상을 확대했지만 소규모 공익법인들은 감사 대상에서 빠져 있어 여전히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내년부터는 국세청장이 외부 감사인을 지정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까지 도입된다. 공시부터 감사까지 공익법인의 살림살이를 더욱 꼼꼼히 챙기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감사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익법인의 회계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 “감사인 지정제 ‘만능키’ 될 수 없어”

공익법인 감사인 지정제는 4년은 외부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고, 2년은 감사인을 지정받는 제도다. 6년은 자율로, 3년은 감사인을 지정하는 상장기업보다 지정 주기가 빠르다. 구체적 대상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총자산 1000억 원 이상 공익법인부터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감사인 지정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회계업계는 대체로 감사인 지정제가 감사의 독립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친분이 있는 회계법인과 손잡고 느슨한 감사를 받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입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감사인 지정제는 반쪽 대책이라는 시각도 있다. 회계법인 더함의 최호윤 대표는 “기업이 사회공헌을 위해 출연한 공익법인은 그룹 안에서 오가는 돈이 불투명한 경우도 있어 감사인 지정제를 통해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 “그럼에도 도입 대상을 넓히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법인은 늘어나는 감사 비용이 적지 않은 부담이다. 2019년 금융감독원이 감사인을 지정한 기업의 경우 감사 비용이 2.5배가량 늘었다. 감사인 지정제로 시간당 단가 결정권이 회계법인으로 넘어간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박인수 월드비전 경영전략본부장은 “감사는 투입 시간만큼 금액이 올라가는데 공익법인 재무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감사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후원금을 감사비로 더 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규모 단체 회계 지원 강화해야

실제로 공익법인에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한 나라는 없다.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선임해도 감사 결과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비영리단체의 감사 양식을 간소화해 회계관리를 용이하게 도와주는 제도도 있다. 미국 뉴욕주는 연간 총수입이 100만 달러(약 11억 원)가 넘는 비영리단체는 외부 감사를 받지만, 25만 달러 이상∼100만 달러 미만이면 감사 대신 ‘회계 검토’를 받는다. 기존 서류와 결산 내용의 일치 정도를 확인하는 약식 회계감사로 호주도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회계 전문가가 없는 단체에 회계 교육을 지원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2019년 기준 전체 공익법인 9860곳 중 자산규모 10억 원 이하인 공익법인은 42.6%(4197곳)에 이른다. 기부금을 목적대로 쓰고서도 회계 처리가 서툴러 비용 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오해를 받는 경우도 생긴다. 배원기 홍익대 경영대학원 세무학과 교수(공인회계사)는 “바우처 제도를 만들어 경력단절 여성이나 은퇴자 등이 소규모 단체의 회계 업무를 지원하거나 교육하면 회계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익법인이 회계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일원화된 공익법인 관리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국세청과 각 지방자치단체, 소관 부처에 보고하는 공시양식의 수입과 비용 항목, 기준 등이 제각각이다. 한 공익법인 관계자는 “퇴직연금 운용 수익을 고유 목적 사업에 쓰는 것이 잘못됐다고 구청 감사에서 지적받은 것을 회계법인이 바로잡은 적도 있다”며 “감독은 이중 삼중으로 하지만 감독기관의 전문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