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문재인의 실패한 9년, 정치를 직업 정치권에 가둔 결과 정치권 밖 어떤 인물이 부상하는 건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정치적 현상 가능한 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송평인 논설위원
2012년 당시 민주당의 문재인파(派)만이 아니라 보수 진영도 안철수를 애송이로 폄하하며 공격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집권 이후 진보 진영은 86세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었다. 안철수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여기는 사람 중에서 그런 재편에 거부감을 가진 세력을 대변한다. 보수 진영이 넓게 멀리 내다보았다면 어땠을까.
86세대 운동권은 서구식으로 분류하자면 극좌파에 해당한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할 때의 그 좌파가 아니다. 문재인 시대에 들어와 만천하에 드러난 86세대 운동권의 반(反)민주성을 86세대 학생 대중들은 이미 대학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최장집 교수에 따르면 ‘정치권력 앞에서 취약하게 조직된’, 그러나 한상진 교수에 따르면 ‘진보적인 중민(中民)’이 바로 학생 대중이었고 안철수는 그 학생 대중의 하나였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19세기 중반 이후 정치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직업 정치가들의 등장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1919년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유명한 글을 썼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국회의원이나 그 보좌관이 전형적인 직업 정치인이겠지만 베버는 기자를 최초의 직업 정치가로 봤고, 전문직 중에서는 변호사를 정치에 반쯤 발을 걸친 직업으로 봤다. 베버의 관점이 훨씬 더 풍부하게 직업화하는 정치의 현실을 잡아내고 있다.
진보 정당으로 갈수록 정치는 직업 정치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진보 정당의 출현이 역사적으로 직업 정치가의 등장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 정치는 정치를 직업 정치의 폐쇄회로에 가두지 않고 일상에 토대를 두려는 경향이 강해 직업 정치권 밖에 상대적으로 더 개방적이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첫 당선 이래 민주당에 5차례 선거에서 진 공화당이 정권을 되찾아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통해서다. 리처드 닉슨 탄핵 이후 위기에 처한 공화당에 신보수주의로 새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한국에서도 보수 정치는 군인 박정희와 기업가 출신인 이명박을 통해 경제적으로 큰 기여를 했다. 박정희와 달리 이명박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한국의 고질적 부동산 문제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 뉴타운 정책만으로도 그는 민주화 이후 어떤 대통령보다 뛰어나다. 반면 진보 진영의 노무현과 문재인이나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는 반쯤 정치인인 변호사 출신이다.
정치권 밖의 정치적 히어로의 등장은 직업 정치가 아니라 일상에 뿌리를 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작동하는 것으로 보고 환영해야 할 일이다. 안철수만이 아니라 윤석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