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心中 따른 이익공유제 나랏빚 늘자 민간에 기대는 것
박중현 논설위원
대통령 지적처럼 코로나19로 인한 ‘K자형 양극화’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수출 대기업, 금융회사 직원들은 수입이 감소하지 않고 재택근무만 많아졌다. 110만 명을 훌쩍 넘은 공무원들 역시 나랏빚이 늘었다고 월급이 줄진 않는다. 650만 명 자영업자 가운데 영업이 제한된 음식점 주점 노래방 헬스클럽은 폐업이 속출하지만 배달을 많이 하는 치킨집은 매출이 는 곳도 적지 않다. 이미 취업 문턱을 넘은 청년과 코로나 발생 후 일자리를 찾다가 포기하고 ‘그냥 쉬는 청년’의 차이는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는다.
맞는 말인데도 고통의 평등, 불평등이란 표현이 낯설었던 건 일반적인 언어습관과 다르기 때문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문 대통령 취임사처럼 평등이란 말은 ‘기회’같이 긍정적인 단어와 잘 어울린다. 그래서 나눠 줘도 아무도 안 반길 고통 뒤에는 ‘나눠서 부담한다’는 ‘분담’이 많이 쓰인다.
이 대표가 대통령 심중(心中) 읽기에 성공했다는 건 18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확인됐다. 대통령은 “그런 (코로나 승자) 기업들이 출연해 기금을 만들어 고통 받는 소상공인·자영업자, 고용 취약계층을 도울 수 있다면 대단히 좋은 일”이라며 “다만 제도화해서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추진할 순 없지만 당이 나서준다면 고마운 일이란 뜻이다. “왜 40%대인지 근거가 뭔지 알려 달라”는 질문 하나로 기획재정부의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을 무너뜨렸던 대통령도 퇴임을 1년 4개월 앞두고 국채를 무한정 찍어내 돈을 쓰는 건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라도 민간의 돈을 이쪽 주머니에서 저쪽 주머니로 함부로 옮기는 건 자유시장경제를 하는 민주국가가 쓸 만한 정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 정부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볼 수도 없다. 임기 초 2년간 최저임금을 30% 가까이 올린 건 식당 주인, 편의점주의 이익 일부를 종업원, 아르바이트생 수입으로 옮긴 것이다. 주택, 상가 임대료 상한을 제한하는 건 임대인 수입을 세입자에게 옮기는 정책이다. 편의점주, 임대인이라고 여유 있으리란 보장이 없지만 돈 안 쓰고 생색 낼 수 있는 이런 정책들을 정부와 여당은 선호해 왔다. 2월이 지나면 결국 자영업자를 돕겠다며 돈 낼 ‘착한 기업’들이 줄을 설 것이다. 지금 한국에선 고통도 이렇게 쉽게 평등해진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