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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은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입력 | 2021-01-28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 <9> 거울 속의 나



영화 ‘버드맨’에서 재기를 위해 애쓰는 왕년의 스타 리건 톰슨이 공연장 대기실에서 강박에 사로잡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본다. 20세기스튜디오 제공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2014년)에서 왕년의 스타 리건 톰슨은 재기를 위해 미국 브로드웨이 연극에 도전하지만 평론가의 냉혹한 평가에 좌절한다. 그는 거울을 보며 자신을 조롱하는 세상에 대한 강박관념을 폭발시킨다. 상황은 다르지만 송나라 소순흠(蘇舜欽·1008∼1048)도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유사한 방식의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당시 소순흠은 인생 최악의 고난을 겪고 있었다. 시인은 정치가이자 학자인 범중엄(范仲淹·989∼1052)의 정치개혁을 적극 지지하였는데, 반대파의 모함으로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 평민이 되고 말았다. 시인은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쑤저우(蘇州)에 은거했는데 시도 이 무렵에 썼다.

시인은 먼저 외모 묘사를 통해 자신의 강직한 면모를 드러내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싶었지만 숨어 살 수밖에 없게 된 사정을 밝히고 있다. 그러곤 병치레가 잦지만 글쓰기로 소일하는 처지를 애써 자위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돌연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비춰주지 못한다고 거울을 꾸짖는다.

거울에 내면을 비춰 본다는 말은 일찍이 남북조시대 시인 유신(庾信·513∼581)의 거울 제재 운문(경부·鏡賦)에서 사용한 적이 있다. 진시황은 사람의 내면을 비춰 보는 거울을 가지고 있었는데, 궁녀들을 이 거울에 비춰 보고 사특한 마음이 드러나면 죽였다고 한다(서경잡기·西京雜記). 시의 표현은 이 이야기를 비틀어 쓰고 있다.

한시와 달리 주인공이 창밖으로 몸을 날리는 영화의 마지막은 의미가 모호하다. 이 결말을 자존감 회복에 대한 은유로 해석할 수 있다면, 한시에선 부당한 현실을 향해 자신의 진정성을 직설적으로 항변하고 있어 대비된다. 리건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는 존재하지 않아”라고 절망적으로 되뇌었다면, 소순흠은 청동 거울에 빗댄 불의한 무리에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알겠어?”라고 힐난한다.

한시에서 거울은 정치적 권계의 상징이거나 여성의 화장 도구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주제상으론 자신을 성찰하거나 늙어감을 탄식하는 작품이 많다. 거울을 빌려 자신의 격정을 토로한 이 시는 거울 한시의 계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영화와 한시에 나오는 거울 속 두 남자의 모습은 서글프다. 리건은 세상의 인정을 갈구하다 현실의 자신과 과거의 버드맨으로 자아분열을 일으키고, 소순흠은 억울함을 애써 감추고 해명하다 격한 분노를 터뜨린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왜곡된 나를 반영한다. 거울에 대한 화풀이는 결국 세상에 대한 분노이다. 사회로부터 부당하게 매도당한 사람들 역시 이런 마음일 것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