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배송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2021.1.28/뉴스1 © News1
오는 29일 택배노조와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이 총파업과 분류인력 철수를 단행한다. 택배기사와 하청업체가 동시에 ‘보이콧’(boycott)에 나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예고된 셈이다. 택배 물량이 급증하는 설 명절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택배 대란에 대한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택배업계는 ‘사회적 합의문’ 발표 시점부터 이미 예고된 사태였다고 자조한다. 노동계 숙원이었던 ‘분류작업’ 업무와 비용을 택배회사가 모두 떠안았지만 ‘택배요금 현실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균형점이 깨진 합의문을 단숨에 밀어붙이다 탈이 났다는 분석이다.
총 8500여명의 택배기사와 분류인력이 한날한시에 업무를 중단할 경우 대규모 ‘물류대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택배 노사의 ‘무력 시위’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소비자 몫’이 됐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28일 물류업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29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 같은 날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대리점연합)도 지역 택배 서브터미널에 투입했던 분류작업 지원인력 3087명을 전면 철수한다.
이번 총파업에는 CJ대한통운·한진·롯데택배 소속 노조원 2650명이 참여한다. 분류작업 거부에 나선 우체국택배를 포함하면 전체 총파업 규모는 5450명으로 늘어난다. 전국 택배기사 5만여명의 약 11% 규모다.
국내 1위 택배사업자인 CJ대한통운의 타격이 가장 크다. 총파업에 참여하는 택배노조 조합원 중 CJ대한통운 소속은 1500여명에 달한다. 여기에 대리점연합 소속 분류인력까지 철수하면 총 4587명의 택배기사와 분류인력이 업무에서 손을 떼게 된다. CJ대한통운이 택배시장 점유율 5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배송지연 사태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택배노조와 대리점연합이 집단행동에 나선 배경은 ‘분류작업’에 대한 책임과 비용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택배노조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각 택배사들이 ‘분류작업을 계속하라’는 공문을 내려 사실상 사회적 합의를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합의기구)는 지난 21일 택배회사가 분류작업 업무와 분류인력 투입을 전담하는 내용의 ‘1차 합의문’을 발표했다. ‘공짜노동’ 논란이 가까스로 봉합된듯 했지만, 택배사-대리점-노조 3자의 해석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갈등이 재점화한 셈이다.
현재 택배노조와 대리점연합은 “합의문에 따라 분류인력을 추가 투입하고 적정한 수수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택배회사는 “합의문은 대원칙이며,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협의를 거쳐 장기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사 간 ‘진실공방’까지 불거졌다. 김태완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사측의 ‘분류작업 지시 공문’ 하달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회적 합의안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택배사들이 자신들의 말을 번복해 노동자들에게 분류작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택배업계는 곧바로 “공문 하달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응수했다. 배명순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위원회 사무국장 “어느 택배회사도 해당 공문을 보낸 사실이 없다”며 “그런 공문이 있다면 왜 공개하지 않는가”라고 맞받았다. 실제 택배노조는 아직 문제의 공문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업계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택배비 현실화’가 합의 내용에 빠졌다는 점을 지목한다. 합의기구가 택배노동자 과로방지 대책만 우선 시행하고, 택배비 현실화는 뒷전으로 미루면서 ‘반쪽짜리 합의문’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다.
합의문은 택배회사가 분류작업 업무와 분류인력 인건비를 전담하고, 장기적으로 물류 인프라를 자동화하도록 규정했다. 택배기사는 집화·배송·전산입력 등 오직 ‘배송’ 업무만 담당하고, 근무시간도 주 최대 60시간(일 최대 12시간)으로 단축된다. 오후 9시 심야 배송은 원칙적으로 금지다.
택배기사는 ‘공짜노동’에서 해방됐지만, 택배회사는 천문학적인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됐다. 한국통합물류협회가 합의문 발표 직후 “과로방지대책은 택배회사와 영업점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택배요금 현실화, 택배 거래 구조 개선, 택배 산업에 대한 국가의 세제 및 예산지원과 제도 개선, 홈쇼핑·온라인쇼핑몰 등 화주들의 불공정 요구 등이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류협회의 ‘비용 걱정’을 엄살로 치부하기에는 택배산업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 택배업계는 잇단 노동자 과로사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업계 전체가 만성적인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택배회사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2~3%로 업계 최저 수준이다. CJ대한통운은 지난 2019년 10조4151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3072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2.9%에 그쳤다.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도 각각 2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도 영업이익률은 4.4%, 0.7%에 불과했다.
특히 한진은 지난해 영업이익 1110억원을 달성해 전년 대비 22.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률은 5%에 머물렀다. 택배업계가 ‘코로나19 특수’를 누렸다는 분석이 쏟아졌지만 정작 알맹이는 남는 것이 없는 장사였던 셈이다.
택배산업이 만성 부진에 시달리는 이유는 ‘낮은 택배비’ 때문이다. 2019년 택배 단가는 박스당 평균 2269원으로 해외 선진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페덱스는 8달러90센트(1만88원), UPS는 8달러60센트(9750원)로 최대 4.4배 비싸다. 일본 야마토 익스프레스 택배비도 676엔(7353원)으로 3배 넘는 가격을 줘야 한다.
결국 ‘택배비’와 ‘과로’는 어느 하나만 해결할 수 없는 양면의 문제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기구는 논의 과정에서 물류협회가 제안한 ‘최소요금제’를 최종 합의문에 포함하지 않았다.
최소요금제는 택배요금 하한선을 2000~2500원으로 정하는 가격 하한제다. 당시 물류협회는 택배업체가 노동계 요구사항인 분류작업 책임소재와 분류작업지원인력 투입을 전담하기 위해서는 1400~1800원 수준인 온라인쇼핑몰 택배요금을 높여달라고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 사무국장은 “합의기구에 온라인쇼핑몰, V홈쇼핑, 소비자단체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했지만 최소요금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주체는 없었다”며 “국토교통부도 2월에 ‘거래구조 개선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결과가 나오면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