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표절의 덫에 빠지기 쉬운 세상 ‘질문하는 힘’이 ‘표절 백신’ 될 수 있어
김희균 문화부장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한때 가장 골칫거리였던 논문 표절은 표절 판정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학교나 학회의 처벌 규정이 강화되면서 많이 줄었다. 반면 온라인에 모든 콘텐츠가 떠다니면서 표절은 모두의 일상 영역으로 들어왔다.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Ctrl C’와 ‘Ctrl V’의 막강한 조합으로 베끼지 못할 것이 없다. 최근 한 일반인이 소설, 가사, 사진 등 온갖 것을 베껴 각종 상과 상금을 휩쓴 것이 전형적인 사례다. 육군사관학교의 표어를 살짝 틀어 국정원 표어 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면 가히 표절계의 능력자라 할 수 있다.
이 일이 공분을 사자 정부는 전수조사라는 칼을 뽑아들었다. 먼저 남의 문학상 수상작을 도용해 5개의 문학상을 받은 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 문학상 현황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리포트 공유 사이트에 올라온 보고서를 표절해 특허청장상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이 시행하는 공모전 실태를 전수조사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드는 전수조사란 조사 과정에서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을 때 효율적인 수단이다. 아동학대 의심 가정을 조사해 피해 아동을 구조하거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발생지를 조사해 무증상 감염자를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정부 기관이 각종 공모전을 전수조사한들 ‘표절 심사를 잘하라’고 권고하는 것 외에 무슨 효과를 거둘 거라 기대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반짝 조사로는 표절을 막을 수 없다. 정부가 가만있을 순 없으니 뭐라도 해야겠다면 표절에 대한 기준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사람들에게 표절은 정말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표절로 치러야 할 대가가 무시무시하다는 실례와 정의를 보여주는 게 낫다.
정부가 제 갈 길을 찾는 동안, 갈수록 표절의 덫에 빠지기 쉬워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어쩌면 ‘질문’에 있을지 모른다. 표절을 하게 되는 일차원적 이유는 자신만의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없는 이유는 좀처럼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력이나 창의력마저도 학원에서 훈련받느라 당최 뭔가 궁금할 겨를이 없는 요즘 아이들은 표절에 더욱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사실에 대한 궁금증이나 윤리·가치에 대한 의문이 생겨도 검색 한 방으로 해결하는 데 익숙한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쯤 유료 리포트 사이트를 뒤져 과제를 해본 이라면, SNS에서 본 문장이나 사진들을 오려다가 그럴싸한 게시물을 만들어본 이라면, 인터넷 댓글을 이리저리 조립해 마치 내 생각인 양 써본 이라면 스스로 물어보자.
내가 한 일이 표절이었던가? 겨우 이 정도를 표절이라고 하는 건 적절한가? 만약 표절이라면 대가는 어느 정도 치르는 것이 적정한가? 자문자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 있을 정도로 질문하는 힘이 생긴다면 표절 백신을 맞은 셈이다.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