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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 바다와 싸우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44〉

입력 | 2021-01-29 03:00:00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고향 동해안 죽도산 뒤로 돌아가 넓은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어른들은 물질을 하다 보면 북태평양이 나온다고 했다. 북태평양을 항해하고 싶었다.

해양대를 졸업하고 드디어 세 번째 배에서 진짜 고대하던 북태평양을 건너게 되었다. 북태평양이라고 다른 대양과 다를 것은 없었다. 그런데 항해 내내 해도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해도는 항해자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한다. 북태평양은 섬이라고는 없는 깊고 깊은 바다이니 해도에 나타낼 것이 없다. 그래서 해도 대신 플로팅 시트라는 백지를 활용한다. 밤에는 달과 별, 낮에는 태양을 잡아서 선박의 위치를 나타낸다. 4월에는 안개가 많이 낀다. 일본을 떠나면서 열흘 이상 안개가 자욱하다. 우리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학교에서 배운 지문항해와 천문항해가 무용지물이다. 그야말로 까막눈 항해를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는 위성항법이 나오지 않아서 이런 항해를 했다. 지금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위도와 경도가 바로 나온다.

북태평양의 겨울 날씨는 너무나 험악하다. 저기압이 발생해 북위 40도 근처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이동한다. 미국으로 건너갈 때에는 저기압의 아래에 위치해야 뒷바람을 받으면서 편하게 갈 수 있다. 원목을 가득 싣고 우리나라 쪽으로 건너올 때가 겁난다. 원목선은 갑판에 원목을 가득 싣기 때문에 복원성이 나쁘다. 그런데, 알래스카를 지나면서 뱃전을 때리는 파도가 원목에 부딪치면서 얼음이 되어 무게를 가중시킨다. 무게중심보다 훨씬 높은 곳에 무게가 가해지기 때문에 복원성은 더욱 나빠진다. 여기에 저기압을 앞에서 만나게 되면 위험천만이다. 저기압은 지구의 자전 때문에 항상 동쪽으로 이동한다. 우리 배는 서쪽으로 항해한다. 저기압의 바람은 중심을 향하여 반시계 방향으로 불어간다. 따라서 저기압의 중심보다 항상 위에 있어야 뒷바람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저기압과 자리 잡기 싸움을 며칠 동안 해야 한다.

대항해시대 선장들은 북쪽으로 올라가서 항해하면 최단거리 항해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항공기가 택하는 대권항법이다. 우리 배는 알래스카를 향해 올라가서 알류샨열도를 따라 내려온다. 저기압이 더 북쪽으로 향해 오면 우리 배도 더 북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한번은 너무 올라가서 러시아의 알류샨열도로 들어갔다. 당시 대한항공 피격 사건 이후라서 러시아에 나포되지 않을까 상당히 긴장했었다.

파도를 옆에서 받자 선박이 오른쪽으로 5도 이상 기울었다. 횡파를 한 번 더 맞으면 배는 전복될 위기 상황! 선원이 선교에 총집합했다. 선장도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벌벌 떨었다. 그러자 경험 많은 갑판장이 슬리퍼를 벗어서 “당신이 무슨 캡틴이냐”며 얼굴을 때렸다. 정신을 차린 선장이 오른쪽에 실린 원목의 상당량을 바다에 버리라고 지시했다. 원목을 버리자 선박은 다시 중심을 찾았고, 우리는 목적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원목선을 4척이나 타며 겨울 북태평양의 저기압을 뚫고 항해를 완수했다. 생사의 갈림길에도 많이 섰다. 그러면서 바다에 더 순응할 줄 아는 진정한 바다 사나이가 됐다. 동해안 바닷가 꼬맹이가 동경했던 북태평양 바다는 그에게 최연소 선장 타이틀을 붙여주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