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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싫어도 또 본다며 우리 개그를 ‘지옥맛’이래요”

입력 | 2021-01-29 03:00:00

유튜브 누적 조회 8300만… ‘피식대학’ 개그맨 3인방
이용주-정재형-김민수 공채 출신, 꼰대 복학생-민폐 산악회 모임 등
씁쓸한 인간군상 사실적 표현 “TV 개그 프로 폐지로 실직자?
유튜브로 플랫폼 바뀌었을뿐”



27일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멤버 김민수 이용주 정재형(왼쪽부터)이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사무실에서 피식대학 로고를 새긴 동판을 들어 보였다. 이 동판은 동료 개그맨 이창호가 만들어 선물했다. 이들은 “소통이 단절된 세상을 웃음으로 잇는 아티스트가 되겠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말 꼴도 보기 싫은데, 제가 이 영상을 왜 자꾸 보는지 모르겠네요.”

최근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댓글이다. 채널 속 여러 콩트 시리즈에는 우리가 살면서 본 씁쓸한 인간 군상이 소름 돋을 정도로 비슷하게 녹아 있다. 후배에게 인사를 강요하는 ‘꼰대’ 복학생, 사랑에 도취된 ‘느끼남’, 등산하다가 추하게 싸워 민폐를 끼치는 산악회원…. 사람들은 보기 싫은데 또 보게 되는 ‘지옥맛’ 개그에 환호했다. 누적 조회수는 8300만 회, 구독자는 약 50만 명에 달한다.

자아를 잊고 캐릭터에 잡아먹힌 듯 연기하는 ‘피식대학’ 3인방, 개그맨 이용주(35) 정재형(33) 김민수(30)의 ‘본체’를 27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피식대학엔 ‘배꼽냄새’처럼 맡기 싫어도 자꾸 맡게 되는 중독성이 있나 보다. 여러 인물을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채널의 매력은 시리즈별로 익살스러운 여러 캐릭터를 등장시킨 점. 맏형 이용주는 “우리가 소화하는 캐릭터들을 ‘부캐’라고 생각한다. 요즘 ‘멀티 페르소나’ ‘부캐 열풍’이라던데 우리가 하던 게 부캐 연기다”라고 했다. 최근 가장 인기를 끄는 시리즈는 ‘B대면데이트’다. 코로나19로 대면 데이트가 어려우니 남성 네 명이 비대면 영상통화로 데이트를 한다는 주제다. ‘B급’을 지향해 ‘B대면’이다.

이용주는 중고차 딜러, 정재형은 다단계 회사 영업사원, 김민수는 연하남 힙합 래퍼 역을 연기한다. 이들 외에 개그맨 김해준(본명 김민호)이 카페 사장으로 출연하며, 동료 이창호도 조만간 ‘미래전략실장’ 역으로 합류한다. 이들은 “TV에는 고시 합격자, 금수저처럼 실제 주변에 많지 않은 능력자만 출연해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며 “채널A ‘하트시그널’이 천국맛이라면 ‘B대면데이트’는 지옥맛”이라고 했다. 정재형은 “특정 직업군을 희화화하기보다 현실에서 꺼릴 법한 남성상을 모았다”고 했다. 이 콩트로 여성 구독자 비율은 40%까지 늘었다. 반응은 뜨겁다. 광고, TV 출연, 패션화보 촬영부터 박막례 할머니 등 유명인과의 협업도 늘었다. 아이돌 영상에나 있을 법한 ‘리액션 영상’도 끊임없이 제작된다.

산악회 중년 남성들의 모습을 빼다 박은 ‘한사랑 산악회’, 05학번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학 선배들을 그린 ‘05학번이즈백’도 대표 콘텐츠다. 과거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코너별로 완전히 다른 내용을 그리는 것처럼 이들 시리즈도 신맛부터 쓴맛까지 보는 맛이 쏠쏠하다.

그간 유튜브에서 비슷한 콩트물이 없던 건 아니다. 세 사람의 성공 요인은 현실을 빼다 박은 듯한 관찰력이다. 김민수는 “‘놀다 보니 영감 받았다’며 천재처럼 허세도 부리고 싶지만, 미친 듯 회의한 끝에 나온 산물이다. 결국 엉덩이 싸움”이라고 했다. 정재형은 “준비는 철저히 하되 촬영 순간부터 연기를 각자에게 믿고 맡기는 봉준호 감독 스타일”이라고 했다. 이용주도 “공식 퇴근시간은 오후 6시지만 정시 퇴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웃었다.

3인방은 지상파 방송사 공채 개그맨이다. 이용주 김민수는 SBS 입사 동기로 ‘웃찾사’에서 활약했고, 정재형은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했다. 무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 스탠딩 코미디도 해봤고 2019년부터 영상을 만들었다. 처음엔 환호하는 이가 없었지만 이내 변곡점이 찾아왔다. 몇몇 성대모사 영상이 그야말로 ‘터졌고’ 이들의 진가를 알아본 팬들도 움직였다.

세 사람은 개그 프로그램 폐지로 인한 실직자가 유튜브에서 성공했다는 동정 어린 시각에는 고개를 저었다. 이들은 “원래 개그맨들은 매주, 매일 새 아이디어로 도전한다. 많은 아이디어를 넣을 수 있는 유튜브로 플랫폼이 바뀐 것뿐”이라고 했다. 향후 채널의 방향성을 묻자 정재형은 다단계 영업사원 캐릭터로 변신했다. “채널을 발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세 사람의 단단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