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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대접 받을 생각 없소” ‘젊은’ 일본 단카이 세대의 지혜[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 2021-01-31 09:00:00

나이 들수록 열심히 배우는 일본 단카이 세대, 한국 386에 시사하는 것




어느 나라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세대가 있다. 대개 머릿수가 많고 활동적이며 운도 좋은 베이비붐 세대가 그 주인공이다. 일본에서는 1947~1949년 사이 탄생한 약 800만 명이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이른바 단카이((團塊·덩어리) 세대다. 경제 각료이자 작가였던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의 1976년 소설 ‘단카이의 세대’에서 나온 이름이다. 이들은 성장과 전성기를 지나 퇴직하기까지 전후 일본사회를 들었다 놨다 하며 영향을 끼쳤다.

● 입시지옥에서 버블경제까지, 현대일본을 주도한 세대
2004년 일본 연수 중 모 신문사가 주최한 심포지움에 간 적이 있다. 사회복지 관련 주제였는데, 수백 명의 청중 대부분이 늙수그레한 중년과 노인이라는 점에 놀랐다. 강연 뒤 질의응답시간에도 주로 노인들이 손을 들었다. 사회자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젊은이가 발언했으면 한다”며 가물에 콩나듯 끼어있는 청년들의 질문을 유도했다. 명실공히 노인을 공경하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기자로서는 그런 분위기가 무척이나 생경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온갖 세미나와 문화행사를 찾아다니던 그들이 바로 단카이세대 혹은 그 윗세대였다.

이들은 성장기에는 입시지옥의 주인공이 됐고 일부는 급진 사상에 빠져 좌파 시위를 주도했다. 그 유명한 전공투, 적군파 세대와 겹친다. 1960~70년대 산업현장에 뛰어들어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었고 한두 시간의 통근시간을 감수하면서도 도심 외곽에 집과 주거단지를 지어 ‘마이홈’ ‘마이카’ 붐을 일으켰다. 1990년대 초 버블이 깨질 때까지 일본에 부동산 광풍이 몰아친 것도 이들의 수요 급증 탓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1987년 6.10항쟁 당시 거리로 나선 한국 대학생들(왼쪽)과 1968년 6월 일본 도쿄의 한 대학에서 시위를 벌이는 전공투 학생들. 사진출처: 동아일보DB 아사히신문



● 대접 받을 생각 없고 자존감 강한 노인 집단
당시 30대 후반이던 내게 단카이세대는 가장 바람직하고 죽이 잘 맞는 아저씨 아줌마들이었다. 살짝 진보적이면서 정의감이 강한 이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자세가 강했는데, 가령 한국인을 만나면 “우선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과한다”며 고개를 숙이는 식이다. 묘하게 반골적이고, ‘(진보적인) 아사히신문 구독자가 가장 많은 집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요즘도 일본 국내 여론조사 결과를 연령대별로 보면 60대를 넘어갈수록 평화헌법 개정이나 보수집권세력에 반대하는 비중이 높다.

마을 회관에 모여 관절운동을 하는 일본 고령자들.

이들은 심포지움 진행자가 홀대를 하건 말건, 누가 부르건 부르지 않건, 필요한 곳은 알아서 찾아다녔다.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들이 잠바에 가방 하나씩 둘러매고는 청년들처럼 돌아다녔다. 공공도서관이나 서점도 이들의 차지다. 전철에서는 자리에 앉지 않는 게 당연하고 웬만한 거리는 건강을 위해서도 걸어 다닌다. 젊은이에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다.

● 일본 전체를 뒤흔든 단카이 세대의 퇴장
이들이 일본의 법정 정년 연령인 60세가 되는 2007~2009년을 앞두고 온 사회가 다시 한번 들썩였다. 각계에서 정점에 오른 숙련된 인력 수백 만 명이 불과 3년 만에 떼 지어 사라진다며 불안해했다. 솔직히 ‘뭘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나’ 싶을 정도였다. 회사들은 몇 년 전부터 인수인계팀을 가동하는 한편, 이들이 퇴직한 뒤 가정과 지역사회에 소프트랜딩하는 것을 돕기 위해 사내교육 프로그램을 대거 도입했다.

2012년 도쿄에서 열린 도쿄국제포럼의 은퇴기술자 채용박람회장을 찾은 일본의 고령층 구직자들. 동아일보DB

사회 전체적으로도 생산가능인력이 대거 피부양인력으로 변하는 부담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일본 정부는 아예 정년 뒤에도 이들을 회사에 붙잡아두기 위한 법 개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결국 고령자 고용안정법이 개정돼 2013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직원이 원할 경우 65세까지 고용이 의무화됐다. 다만 고용연장 방식은 기업에 맡겨 △정년 연장 △계속고용제도 도입 △정년 폐지 등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했다. 요즘 한국 정부가 유사한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일본의 정년제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일본노년학회, “고령자 정의를 75세로 올리자”

노인이 많은 아파트단지에서 탁구를 하며 땀흘리는 고령자들

2017년 일본노년학회는 고령자의 정의를 75세 이상으로 바꾸고 65~74세는 준고령자로 분류해 생산적 역할을 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노인들이 더 오래 일하고 세금을 내라는 뜻이어서 사회적 논쟁이 일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들은 가장 부유한 은퇴세대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한 몸에 받았다. 국민연금과 후생(직역)연금, 기업(회사)연금까지, 탄탄한 3중 연금 구조로 현역 월급쟁이 시절 못지않은 수입이 약속돼 있었다. 일본의 금융자산의 70%를 60대 이상 노인들이 가지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다만 이런 준비가 미흡했거나 불운이 닥친 노인들을 중심으로 점차 ‘하류노인’ ‘장수의 재앙’ ‘노후파산’ 등이 유행어가 됐다.




● 배우려는 자세, 내게 부족함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일본 노인들은 스스로 가능한 한 움직이며 자립적인 생활을 추구한다.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 일본의 사회상은 한국의 미래를 예측하거나 비교할 때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단카이 세대의 특징을 나이 들수록 배우려 하는 자세에서 찾고 싶다. 앞서 심포지움의 예도 있었지만 문화센터와 대학들도 연배의 수강생들로 붐빈다. 2018년 아쿠다가와상 수상자는 63세 주부였다. 남편을 일찍 여읜 뒤 55세에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강좌를 들은 것을 계기로 일본 최고의 문학상을 거머쥐었다. 퇴직 뒤 평생의 연구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발굴하고 필생의 과업으로 책을 써내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무언가를 배우려는 자세는 자신에게 부족함이 있다는 걸 안다는 전제에서 생겨난다. 이들도 나이 들면서 조금은 고집불통이 되고 매너가 부족해지고 인색해지기도 하지만 자신을 낮춰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특히 인지증(치매)을 피하기 위한 노력에 필사적이다. 서점에서는 치매 예방을 위한 두뇌훈련용 연습장, 치매예방을 위한 음식과 운동법, 신문 칼럼이나 불경 등을 베껴쓰는 노트, 빈칸에 색칠을 하는 그림책 등이 불티나게 팔린다.

● 단카이 세대 닮은 386세대, ‘오랜 기회 독점’ 비난 새겨들어야

386세대의 ‘맏형’들인 1960년생들이 지난해 법적 정년을 맞았다. 동아일보DB

일본에서 쏟아져 나오는 단카이 세대 관련 기사들을 보며 우리 386(1990년대에 30대, 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생) 세대와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무엇보다 시대정신과 주장을 몸소 구현하는 대목이 닮았다. 운동권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큰 불이익 없이 사회에 진출했고 각자 자리에서 두각을 나타내 출세의 사다리에 올라탔다. 너무 오래 기회를 독점하는 것 아니냐는 원성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아마도) 괜찮았다.

아사히신문의 현대용어사전인 ‘지에조(知惠藏)’에서는 단카이 세대에 대해 ‘전교생이 전람회장에 들어갔는데 앞에서 너무 오래 감상하는 바람에 뒷줄에 선 후배들이 폐장 시간에 쫓기게 한 세대’라는 표현으로 단카이 세대의 오랜 기회독점을 비판했다. 마침 4월 치러질 서울시장 선거 주요후보는 10년 전과 같은 얼굴들로, 대부분 386세대다. 이들이 가진 경륜과 지식, 사회적 인지도는 그런 자격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아쉬움도 남는다.

어찌됐건 386의 맏형격인 1960년생이 지난해 법적 정년을 맞았다. 앞으로 이어질 386세대의 퇴장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쉬워할지는 미지수다. 이들이 과거 노인들과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해보면서, 올해 72~74세를 맞이한 일본 단카이세대의 모습을 살펴봤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차 한잔 타임

“우리가 아는 ‘노인’이 아니다.”

이런 제하에 새로 법적 ‘노인’에 편입된 베이비붐 세대에서 희망을 보자는 지난주 ‘100세 카페’ 글에 많은 독자가 댓글로 의견을 주셨습니다.

‘요즘 65세는 10살은 아래로 봐야 한다’거나 ‘멋진 노인이 늘고 있다’며 공감을 표하는 독자 여러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분도 계셨지요. 반면 노인들의 매너 없음과 불통 등을 흉을 보는 분도 간혹 계셨습니다. ‘활기찬 노인이란 도시부의 얘기일 뿐, 지방에는 기운없는 노인들이 많아 우울해진다’고 토로하는 독자도 계셨고, 현재의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부양 부담에 치이는 마지막 ‘낀 세대’라며 애환을 토로하는 의견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정년을 늘려야 한다거나 노인들에게 더 많이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는데, 앞으로 곰곰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듦과 은퇴, 생명의 쇠퇴에 대해 뾰족한 답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를 살아간다 해도 저마다 삶이 다르니 일률적으로 ‘노인은 이렇다’거나 ‘이 길로 가야만 한다’고 단언하기도 어렵습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도리도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어떤 시대건 우리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게 만들려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가령 노인이 되어도 사회와 소통하고 자신의 역할을 갖고 조그만 수입이라도 얻을 수 있는 세상, 어르신들이 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 아이들도, 그 아이의 아이들도 살기 좋은 세상에 가까워질 확률이 커집니다.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되, 좀더 낫게 바꾸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100세 카페는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