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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만 잔치”… 美 개미 박탈감이 ‘공매도 전쟁’ 불렀다

입력 | 2021-02-01 03:00:00

코로나 속 부자-금융사 돈 더 벌어
분노한 젊은 투자자들 ‘단죄’ 나서
워런 등 정치권도 청년개미 지지
10년전 ‘월가 점령’ 시위와 비슷




공매도 전쟁터 된 두 기업… 앞날은 안갯속 미국 뉴욕 맨해튼 유니언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게임유통업체 게임스톱의 매장(왼쪽 사진)과 남부 텍사스주 갈랜드에 있는 엔터테인먼트 업체 AMC의 영화관 매장. 미 개인투자자들은 월가 대형 헤지펀드가 공매도한 두 기업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주가 상승을 이끌어냈다. 게임스톱과 AMC 주가는 각각 올해 들어서만 지난해 말 대비 약 17배, 5배씩 올랐다. 헤지펀드들은 코로나19로 많은 타격을 입은 두 업체의 주가가 추락할 것으로 보고 공매도에 나섰지만 개인투자자들의 집중 매수로 큰 손실을 봤다. 뉴욕·텍사스=AP 뉴시스

미국 개인투자자가 월가 대형 금융사의 공매도에 맞서 미 게임유통업체 ‘게임스톱’ 주식을 집중 매수한 배경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난과 양극화로 인한 개인투자자의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코로나19로 실업과 강제퇴거 위기에 맞닥뜨린 젊은 투자자들이 전염병 대유행(팬데믹) 와중에도 부자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게임스톱 주식 매수를 ‘일종의 복수 기회’로 여겨 적극 가담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미 온라인커뮤니티 레딧 등에는 게임스톱 공매도를 주도한 유명 헤지펀드 멜빈캐피털을 비판하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한 투자자는 “2008년 금융위기 때 10대 초반이었지만 당시 충격을 생생히 기억한다”며 “멜빈캐피털은 당시 내가 혐오하던 모든 것을 상징한다”며 월가 대형 금융사를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게임스톱 매수 결정이 금융위기 때 자신과 주변인이 받았던 경제적 고통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젊은 투자자들이 늘어난 것도 개미의 위상과 영향력을 키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과거에는 주식 거래를 위해 거래 금액의 5% 이상을 수수료로 내야 했지만 지금은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주식을 사고팔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권의 지지도 가세했다. 부유세 등을 주창한 민주당의 강경 진보파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헤지펀드와 사모펀드가 주식시장을 자신들의 개인 카지노처럼 다루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희생양이 됐다”며 대형 금융사를 질타했다.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 역시 개인투자자의 게임스톱 거래를 제한한 온라인 무료 증권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를 비판했다.

이에 게임스톱 공매도에 가담했던 유명 투자자 또한 속속 백기를 들고 있다. 게임스톱 공매도를 선언했다가 개미의 표적이 된 앤드루 레프트 시트론리서치 대표는 지난달 29일 유튜브 동영상과 트위터를 통해 “시트론의 공매도 보고서 발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2021년판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 시위로 보고 있다. 2011년 9월 월가 금융사의 일부 젊은 직원은 뉴욕 맨해튼 주코티공원에서 “금융위기 와중에도 천문학적 급여와 상여금을 챙긴 월가 경영자가 금융위기의 진짜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며 세계 곳곳에서 ‘1% 대 99%’의 사회를 비판하는 비슷한 시위가 잇따랐다. ‘뉴욕의 젊은 공화당원’이라는 시민단체는 31일 주코티공원에서 ‘월가를 다시 점령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