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원전 건설 문건 작성·삭제 사실 드러나 문건 모두 공개하고 진솔하게 국민에게 설명해야
정연욱 논설위원
문제의 문건은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180504)’ 등 17건이다. 작성 시점은 1차(4·27), 2차(5·26) 남북 정상회담 사이다. 1차 정상회담이 끝난 뒤 문재인 대통령은 후속 조치를 차질 없이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이 1차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준,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담았다는 USB메모리가 개괄적 총론이라면 산업부 문건은 실무 차원에서 준비한 후속 조치 중 하나일 것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산업부는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 내용은 공개했다. 북한 내 건설, 비무장지대(DMZ) 건설, 국내 신한울 원전 3, 4호기를 통한 전력 송전 등 3가지 방안을 검토한 결과 첫 번째 방안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산업부는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닌 내부 검토 자료’라는 문건 내용을 강조했다. 청와대 등 윗선 보고가 없었다는 것이다.
월성 원전 폐쇄 관련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일요일 심야에 도둑처럼 잠입해서 문건들을 지웠던 산업부 공무원은 검찰 조사에서 “신내림을 받았다”는 황당한 진술을 했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직사회에서 든든한 정치적 뒷배 없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진술을 할 수 있었을까. 더욱이 이번에 문제가 된 북한 원전 문건은 월성 원전과 관련된 감사원 감사와 전혀 무관한 내용인데도 모두 삭제됐다. 삭제 경위는 오리무중이다. 감사원 감사와 뒤를 이은 검찰 수사가 없었다면 이런 일은 그냥 묻혀버렸을 것이다.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이 감사원장을 겨냥해 “집 지키라 했더니 안방을 차지한 개”라고 막말을 퍼부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여권 일각에선 대북 원전 지원 구상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영삼 정부 시절 북핵 협상으로 북한 신포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한 사례를 든다. 당시 경수로에선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우리나라와 세계를 상대로 핵위협을 벌이고 있다. 당시 상황을 20여 년이 지난 지금 기계적으로 대입할 순 없을 것이다.
야당이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에 나서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라고 비난했다. 북한과 탈원전은 현 정부 정책의 핵심 키워드다. 여야가 서로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이유다. 더욱이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여권은 문서 내용을 모두 공개하고 국민에게 진솔하게 설명해야 한다. 좌고우면할수록 의혹은 더 커질 뿐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