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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濠 중견국 동맹으로 급변하는 亞太정세 한목소리 대응을”[파워인터뷰]

입력 | 2021-02-02 03:00:00

레이퍼 신임 주한 호주대사 부임… 수교 60년만에 첫 여성



캐서린 레이퍼 신임 주한 호주대사가 지난달 28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주요 20개국(G20), 세계무역기구(WTO),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국제사회 다자기구에서 한국과 호주 같은 중견국이 위상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아시아태평양에서 한국과 호주만큼 많은 공통점을 가진 나라도 없습니다. 중견국인 두 나라가 협력해 국제사회의 다자주의 질서를 만드는 일을 주도해야 합니다.” 지난달 11일 부임한 캐서린 레이퍼 신임 주한 호주대사(51)가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강대국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중견국 동맹(middle-power alliance)’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며 “인간의 삶에서 친구가 필요하듯 국가도 더 많은 동맹과 우방을 필요로 한다. 두 나라는 서로 믿을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중 갈등,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등으로 국제 정세가 전환점을 맞은 지금 양국이 협력해서 대처하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비상주 북한 겸임대사인 레이퍼 대사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위한 한국과 미국의 대화 노력을 지지한다”며 “북핵은 아시아태평양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인 만큼 호주 역시 CVID가 이뤄지도록 여러 동맹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레이퍼 대사는 시드니대 법학 학사, 모내시대 외교통상학 석사로 1994년 외교부에 입부한 27년 경력의 직업 외교관이다. 주대만 호주대표부 대표, 유럽 및 중남미국 국장, 외교부 내 코로나19 대응총괄팀장을 역임했고 한국에서 처음 ‘대사’ 직함을 달았다. 그의 전임자 17명은 모두 남성이다.

외조부가 6·25전쟁 참전용사인 레이퍼 대사는 “1961년 수교관계를 맺은 양국이 수교 60주년을 맞은 올해 참전용사의 손녀인 내가 최초의 여성 대사로 부임해 영광”이라면서도 “여성 대사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오면 더 좋겠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과 호주의 협력이 왜 중요한가.

“양국은 모두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 언론 자유 등의 가치를 중시한다. 또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견국 지위에 맞는 공공외교를 추진하고 그에 맞는 역할도 수행해 왔다. 그 예가 2013년부터 외교안보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양국 외교 및 국방장관이 격년제로 만나는 ‘2+2’ 회의 개최다. 역시 같은 해부터 양국과 멕시코 터키 인도네시아 등 5개국이 참여한 ‘믹타(MIKTA)’ 협의체도 출범시켰다. 호주는 이달 중 한국으로부터 믹타 의장국 지위도 넘겨받는다. 무엇보다 강대국이 즐비한 아시아태평양의 급변하는 국제 정세, 역내의 급격한 군사 현대화 움직임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중견국 동맹이 절실하다.”

―현실적으로 중견국 외교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최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6월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한국, 호주, 인도 등 3개국을 초청했다. 강대국 역시 중견국과 다자주의 질서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본다. 또 최근 많은 나라가 외세의 정치적, 경제적 강압에 직면하고 있다. 자국 정치를 위해 타국에 경제 압박을 가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럴 때일수록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을 확대하며 스스로를 대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주권과 국익을 수호할 수 있다. 중견국이 힘을 합치면 외세 강압에 영향을 받지 않고도 번영을 구가할 수 있고 원칙에 입각한 국제 질서를 수호할 수 있다. 서로 책임을 나누어서 지고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호주 또한 ‘자유롭고 열린 태평양’ 개념을 중시한다. 왜 중요한가.

“아시아태평양 주요국이 누리는 번영, 즉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근간이기 때문이다. 역내를 자유 법치 시장경제 등 공통 가치를 중시하는 장(場)으로 규정하고 관련국이 국제 질서와 규범에 근거한 협력을 추진하려면 자유롭고, 열려 있으며, ‘포괄적(inclusive)이고 회복력 있는(resilient)’ 태평양이어야만 한다. 2014년 발효된 한국과 호주의 자유무역협정(FTA), 지난해 11월 체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같은 경제 협력 체계 또한 이 바탕 위에서 만들어졌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 또한 미국과 안보 동맹을 맺고 있으면서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착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책임론 공방, 미국 호주 일본 인도 4개국 협의체 ‘쿼드’, 호주산 상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 부과 등으로 호주와 중국의 갈등이 불거졌는데….

“호주가 내리는 모든 결정의 기준점은 우리가 수호하는 가치와 국익에 달려 있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을 경제적 압박 때문에 못 하는 일은 없다. 모든 나라가 비슷할 것이다. 더 많은 국가가 이에 근거한 결정을 내릴 때 세계적으로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비상주 북한 겸임대사도 맡고 있다.

“북한의 CVID를 위한 한국과 미국의 대화 노력을 지지한다. 호주는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전략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한국은 더 많은 동맹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호주가 믿을 수 있는 파트너가 될 것이다. 몇몇 직원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경험을 들려줬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나도 방문하고 싶다.”

―한국과 호주의 경제협력을 어떻게 강화해야 할까.

“FTA 발효 후 한국은 호주에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을, 호주는 한국에 천연자원과 농산물 등을 수출해 왔다. 부임 후 한국 상점에 호주산 와인이 즐비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이처럼 양국이 강점을 지닌 분야가 다른 데다 최근 친환경 산업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양국은 특히 ‘수소경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호주는 수소 생산의 원료인 갈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각종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하고 한국은 자동차 산업의 선진국이어서 양국이 협력하면 신재생에너지, 수소차 등 미래 산업을 선도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제약 및 생명과학산업이 각광받고 있는데 이 분야의 선진국인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

―양국의 경제 협력 정도에 비해 문화 교류는 조금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호주에도 한국 드라마와 가요 팬이 많다. 친구가 ‘한국 대사로 가면 이 드라마를 꼭 봐야 한다’며 ‘사랑의 불시착’을 소개했다. 배우들의 호연이 인상적이었고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호주의 6·25전쟁 참전 등 양국 공통의 역사를 기릴 수 있는 전시회, 서울시립미술관과의 호주 현대미술전 공동 주최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수교 60주년 기념 로고도 공개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구석구석을 방문하고 많은 한국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2014년 4월 토니 애벗 전 총리의 방한을 마지막으로 7년째 양국 지도자의 공식 방문이 이뤄지지 못했다.

“최초의 여성 총리인 줄리아 길라드 전 총리가 집권 첫해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연속 한국을 방문했을 정도로 양국 지도자의 교류가 활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애벗 전 총리의 방한 7개월 후 G20 참석차 호주를 찾았지만 공식 답방은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한국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할 차례다. 코로나19가 빨리 끝나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중 호주에 오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부임 직전 코로나19 대응 업무를 담당했다고 들었다.

“각국이 방역을 위해 무엇을 하고, 하지 않는지, 어떻게 해야 경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간추렸다. 이를 통해 한국과 호주가 방역 정책에서도 유사한 점이 많음을 알았다. 양국 모두 전국 단위의 전면 봉쇄를 실시하지 않았는데도 감염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피해가 많은 일부 지역에 국한된 봉쇄, 입국자에 대한 2주 자가 격리 의무화, 재택근무 장려, 방역 동참의 중요성을 적극 홍보한 결과라고 본다.”

―1남 1녀를 둔 워킹맘이다.

“역시 공무원인 남편이 미국, 네덜란드, 스위스, 대만 등에서 근무할 때마다 내 부임지로 따라와 양육과 가사를 도왔다. ‘워킹맘’ 표현이 일상화했듯 더 많은 남성이 ‘워킹파더’임을 자각하고 행동할 때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미래 세대에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사 머리스 페인 외교·여성장관, 린다 레이놀즈 국방장관 등 스콧 모리슨 현 내각의 주요 각료가 모두 여성이다. 각국의 여성 지도자가 늘어나는 것 역시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미약하지만 최초의 여성 주한 호주대사인 나 또한 누군가의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궁극적으로는 여성 대사가 더 이상 화제가 아닌 시대가 와야 하지 않을까.”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 1970년 호주 시드니 출생, 시드니대 법학 학사, 모내시대 외교통상학 석사, 호주국립대 법률실무학 석사
△ 1994년 외교부 입부
△ 2010∼2012년 주미국 호주대사관 통상공사
△ 2014∼2017년 주대만 호주대표부 대표
△ 2018∼2020년 유럽 및 중남미국 국장
△ 2020년 외교부 코로나19 대응총괄팀장
△ 2021년 1월 11일∼현재 주한 호주대사(비상주 북한 겸임대사)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