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유니티코리아 대표 인터뷰 게임 회사만 쓰는 전문 SW서 모든 산업에서 활용하는 툴로
얼마 전 인터뷰 차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소재 유니티 테크놀로지스 코리아 사무실을 찾았다. 유니티는 게임 개발 소프트웨어(SW), 3차원(3D) 개발 플랫폼이라고도 부르는 게임 엔진을 만드는 회사다. 전 세계 수익 상위 1000개 모바일 게임 중 유니티 SW로 만들어진 것이 53%(2019년 기준)나 된다.
미국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상장을 했다. 2일 현재 공모가(52달러) 대비 주가가 3배(153달러) 가까이 오르는 등 기업가치가 급상승했다. “게임 엔진이 비단 게임뿐만 아니라 각종 산업에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글로벌 기업들뿐만 아니라 현대기아자동차부터 삼성중공업, LG CNS 등 국내 대기업들이 이 회사의 게임 엔진을 활용하고 있다. 게임 회사를 대상으로 한 기업 대 기업(B2B) 사업에서 그 외연을 넓혀나가고 있어 유니티의 행보가 궁금했던 터였다.
인터뷰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회사 관계자와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직원 서너 명 정도만 출근해 있어 사무실은 썰렁했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홀로 회의실에서 태블릿PC를 보며 분주하게 화상 콜을 하는 한 직원의 모습과, 사무실 한 켠에 100여 명 남짓 되는 유니티 직원들의 사진이 흑백으로 찍혀 액자로 진열된 점 정도. 화상 콜 하던 직원의 열정과 사진 속 직원들의 모습이 빈 공간을 채워주는 듯했다. 가벼운 사무실 투어를 마치고 난 뒤 회사 관계자가 말한다. “대표님 화상 콜 끝나고 바로 오실 거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인숙 유니티 코리아 대표가 회사 로고가 새겨진 후드티를 입고 들어왔다.
―코로나19로 온라인 행사가 전방위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유니티의 온라인 행사도 볼거리가 많았어요.
예년에는 유나이트 서울 행사를 매년 5월 오프라인에서 진행했어요. 코로나19로 올해는 우선 2020년 8월로 미뤘었는데, 8월이 되도 팬데믹 진정세가 보이지 않자 12월로 연기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오프라인 개최를 포기하지 못했는데 10월쯤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준비해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사전 영상에 활용된 SW는 유니티로 만들어졌습니다. 실시간 프로덕션 형식이었는데요. 싱크 엔지니어, 라이팅 엔지니어, 비주얼 엔지니어 감독들이 나란히 앉아 작업을 같이 하는 것이었어요. 사인에 맞춰 제가 무대 중앙에서 혼자 떠들면 이후에는 각 영역의 감독들이 실시간으로 영상에 시각물을 반영하고 고치고…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이런 가상현실 기반 영상 콘텐츠를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됐어요.
오프라인 행사의 온라인화, 가상화는 산업계에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LG전자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0에 신제품 홍보를 위한 3차원(3D) 가상 전시관을 열었는데 여기에도 유니티 솔루션이 활용됐다. 베를린 현지의 낮과 밤을 구분해 표현한 전시관 입구와 전시 공간 전체를 실제와 동일하게 꾸며 온라인에서도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행사에 네이버가 만든 소셜 앱 제페토가 활용된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제페토도 유니티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네이버에서 제페토를 만들 때 자체 엔진을 사용하려고 했어요. 저희가 유니티 엔진을 쓰라고 장시간 설득한 끝에 결국 저희 회사 솔루션 기반의 제페토 월드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기존에 가진 엔진을 포기하고 중간에 타 엔진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의사결정이었을 것인데 네이버에서 결단을 해주었죠. 고객사가 옳은 결정을 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유니티 직원들도 몇 개월간 네이버 사무실을 드나들며 서비스 개발에 도움을 제공했고요. 제페토가 유니티 온라인 행사인 유나이트 2020에 활용된 건 이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니티 SW로 만든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기반 서비스는 제페토뿐만은 아니다. SK텔레콤은 유니티 기반으로 점프 AR, 점프 VR 앱을, LG유플러스는 U+ AR 앱을 내놨다. KT는 유니티를 활용해 3D 아바타와 AR 이모티커 등 꾸미기가 가능한 영상통화 앱 ‘나를’을 만들었다. 스마일게이트의 국내 최초 버추얼 유튜버이자 7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세아’도 유니티로 만들어졌다.
―최근의 기업가치 상승은 유니티 SW가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유니티가 이점을 제공할 수 있는 산업 영역들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일례로 현대기아차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이 직접 만든 자동차 데이터를 유니티 솔루션으로 손쉽게 만든 뒤 마케팅에 활용할 영상이든 포스터든 다양한 곳에 쓰려 하고 있어요.
유니티라는 회사의 조직문화는 어떨까.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 회사는 상하 간 소통을 다른 회사보다는 ‘세게’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달에 한 번 본사 최고경영자(CEO) 주재 하에 타운홀미팅을 개최해요. 회사에서 1년에 두 번 직원 만족도 조사를 하는데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부문에서 점수가 높게 나오는 편이죠. 경영진들이 직원들과 소통하려는 문화 때문입니다. 직원들이 오프라인에서는 손들고 질문하고 온라인에서는 슬랙 등을 통해 질의하기도 하죠.” 김 대표 말이다.
CEO뿐만 아니라 임원들도 소통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일명 ‘컬처 미팅’. 전 세계 사무실을 돌면서 직원들의 고충을 듣는다. 주니어, 시니어 직원들 따로따로 ‘이 회사에 다니면서 어떤 것을 하면 만족하겠느냐’는 등 이야기를 나눈다.
최근에는 구성원들에게는 ‘좋은 아이디어가 승리한다’(Best Idea Wins)는 문화를 전파하려고 한다. 최고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여러 그룹 간 의견 충돌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과정을 거쳐 얻어내자는 것이다. 그리고 합의된 사안에 대해서는 딴지는 걸지 말라는 것이다. 김 대표가 말했다.
“한 회사의 서로 다른 두 팀이 각각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고 가정해보죠. 궁극적으로 한 아이디어가 채택되면 쓴맛을 본 부서에서는 ‘저 팀 아이디어가 잘 되는지 두고 보자’는 생각을 가질 수 있어요. 이런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는 우리 주변에 꽤나 많죠. 유니티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결정된 뒤에는 소모적인 경쟁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떤 아이디어가 최고인지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되는 겁니다.”
구성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문화에는 ‘대범해져라’(Go Bold)도 있다. 스타트업처럼 성장하는 회사인 만큼 실패를 걱정하지 말고 혁신적인 도전을 하자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내비치기에 외국계 지사로서의 한계점도 궁금했다. 통상의 외국계 기업 지사에는 의사결정의 자율성이 없어 ‘본사 정책을 따른다’는 수직적 분위기가 강하다. 외국계 기업을 취재를 하다보면 ‘이미 다 나온, 하나마나 한 소리’를 입장이라고 내놓은 경우가 많아 앵무새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데 김 대표는 “유니티코리아는 조금 다르다”고 했다. 한국에서 만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타 지사에 접목시킬 정도로 주체적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다고 했다. 유니티 SW를 만들어 고객사에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활용하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더 나아가 그들이 원하는 솔루션을 함께 만들어주는 종합 컨설팅(프로페셔널) 서비스 얘기다. 한국에서 시작한 프로페셔널 서비스는 본사의 핵심 역량이 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이 같은 컨설팅 기능을 확장하기 위해 ‘핑거푸드’라는 전문 기업을 사들이기도 했다.
“본사에 리소스 투자를 요구했을 때 웰컴하는 분위기에요. 한국 시장에 대한 특수성을 감안해달라는 이야기를 하면 큰 어려움 없이 승인을 받는 거죠. 글로벌 기업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죠.”
유니티는 최근 유니티 퍼블리싱 포털(UDP)을 통해 구글, 애플 등으로 과점된 앱 생태계 시장에 변화를 주려는 행보도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선보인 UDP는 한국의 삼성 갤럭시 스토어, 원스토어를 비롯해 전 세계 11곳의 사업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앱 스토어 플랫폼. 앱 개발자들은 각각의 플랫폼에 맞춤형으로 리소스를 투입하지 않고도 UDP가 제시하는 개발 도구(APK)에 맞춰 앱을 출시하면 연합체에 속한 전 세계 앱스토어에 유통할 수 있다.
김 대표는 “현재 전 세계 600여 개 개발사들이 UDP에서 1000여 개의 게임을 출시했다‘며 ”작은 앱 개발사들은 전통 앱 장터에서 자신들의 서비스를 쉽게 노출하기 어려운데 UDP에서는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신무경 기자 y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