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도 달라진 백악관 언론 브리핑
지난달 20일 미국 동부시간 오후 7시. 흔히 ‘프레스 브리핑룸’으로 불리는 백악관 제임스 브레디룸에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조 바이든 시대를 알리는 첫 언론 브리핑이 열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도널드 트럼프 시대 4년 동안 브리핑다운 브리핑을 받지 못한 백악관 담당 기자들은 ‘굶주린’ 표정이었습니다. 1시간 뒤 파란색 원피스의 젠 사키 신임 백악관 대변인이 진행하는 브리핑을 끝낸 이들은 기뻐 날아갈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젠 사키 신임 백악관 대변인의 첫 언론 브리핑. 미국 주요 매체들이 일제히 속보로 전했다. (폭스뉴스)
기자들 반응이었죠. 이런 축제 분위기 속에서 폭스뉴스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이든 시대가 되면 친(親)도널드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는 완전 찬밥 신세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중재자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죠.
“사키 대변인은 단 한 번의 브리핑으로 4명의 트럼프 대변인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브리핑에서 이렇게 상식이 통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4년 만에 기괴하지 않는 백악관 대변인 첫 탄생.”
사키 대변인의 브리핑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단 한 명의 기자도 공격하지 않았다” “기자들을 존중해준다”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답해줬다” 등의 내용이다. (기자 트위터 캡처)
그렇다고 사키 대변인 체제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닙니다. 새 정권과 언론의 ‘허니문(신혼) 기간’은 곧 끝나기 때문이죠. 지난 대선 때 언론의 보도 방향이 “지나치게 바이든 쪽으로 기울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같은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미 언론은 바이든 행정부의 정국운영 능력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극우매체와의 관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이름도 생소한 케이블TV와 인터넷 언론사들이 대거 주목을 받았습니다. 뉴스맥스, 데일리콜러, 게이트웨이펀딧(이상 인터넷), OAN, 싱클레어(TV) 등이죠. 이들은 대형 언론사도 하지 못한 트럼프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며 명성을 키웠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트위터로 홍보하며 선전도구로 활용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킨 극우매체 OAN의 백악관 담당 기자 샤넬 리온. 한국계로 알려진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을 적극 변호하는 질문을 자주 던져 브리핑룸의 화제였다. (베니티페어)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출입 언론 선정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트럼프 시대에 ‘하드 패스’를 얻은 극우매체들은 결코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브리핑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송곳 같은 질문을 퍼붓겠다는 것이죠. 통합을 내세우는 바이든 행정부도 극우매체들의 브리핑 참석 권한을 “일단 유지하겠다”고 합니다.
사키 대변인의 첫 브리핑 때 ‘바이든 가족의 마스크 미착용’ 질문으로 일약 유명해진 폭스뉴스의 피터 두시 백악관 담당 기자(오른쪽). 기자 가족으로 왼쪽은 ‘폭스 앤 프렌즈’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아버지 스티브. (폭스뉴스)
폭스뉴스의 역할은 첫날 브리핑 때 여실히 증명됐습니다. 이날 사키 대변인은 단 한 차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는데요. 바로 폭스뉴스 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입니다. 폭스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 가족이 취임식 날 링컨기념관 방문 등 공식 행사를 하는 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는 적이 수차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하는 행정명령까지 서명한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대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뼈아픈 지적이죠. 그렇다고 극우 매체의 부정선거 주장처럼 정권의 정통성까지 뒤흔드는 체제 비판 질문도 아닙니다. 이 정도 선에서 행정부 비판이 용납돼야 한다는 것을 폭스뉴스가 보여준 것이죠.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