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준 정치부 기자
“저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 윤 총장이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윤 총장 정직 2개월 징계안을 재가했던 문 대통령의 말이 맞느냐며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검찰의 조직문화나 수사관행을 고치라”며 윤 총장에 대한 아쉬움을 크게 나타낸 문 대통령의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과 온도 차가 컸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문 대통령 발언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윤 총장에게 포탄을 퍼부은 것에 대해 일종의 ‘사격 금지 명령’을 내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24일 법원이 윤 총장 징계안에 대한 효력정지 결정을 내린 뒤부터 이미 여권 인사들은 “청와대가 이제 윤 총장을 그냥 놔둬야 한다”며 “월성 원전 1호기 수사를 하든 말든, 칼춤을 추든 말든 내버려두고 국정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상황이었다.
청와대는 지난해 말 후임 법무부 장관에 민주당 박범계 의원을 지명하는 등 두 차례 개각과 함께 대통령비서실장과 민정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참모진 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국정 쇄신이 이뤄지자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던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도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추 전 장관과 각을 세우면서 야권 대선 주자로 부각됐던 윤 총장도 정작 추 전 장관이 교체되자 야권 지지자들의 시야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추-윤 갈등이 사그라지고 윤 총장이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야권 잠룡들은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뜨거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여권의 포탄을 맞으며 존재감을 키웠던 윤 총장이 전장(戰場)을 벗어나자 야권 대선 주자의 신기루가 벗겨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애당초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이후 야권 주자로 부각된 윤 총장을 향해 총공세에 나섰던 추 전 장관 등 여권 인사들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던 ‘돈키호테’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얼마 전 윤 총장과 통화했다”며 “윤 총장이 ‘자기를 문 대통령이 임명했는데 어떻게 야당 정치인을 할 수 있냐’고 하더라”며 윤 총장의 야당행(行) 가능성을 낮게 봤다.
민주당이 이번엔 법원을 타깃으로 삼아 판사 탄핵소추안 처리를 시도한다. 피아를 구분하는 적대적 사고방식만 앞세우다간 최재형 원장에 이어 ‘제3, 제4의 윤석열’이 생길지도 모른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