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게임업계는 ‘트럭주의보’
서울 마포구 그라비티 본사 앞에 이용자들이 보낸 트럭이 세워져 있다. 이용자들은 트럭 전광판을 통해 항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온라인에서 게임을 즐기던 이용자들이 트럭을 앞세워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조직력을 강화하면서 오프라인에서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위가 제한된 상황과 비대면 방식에 익숙한 게임 이용자들의 성향이 맞물리며 ‘트럭 시위’라는 새로운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게임업체 본사 앞에 트럭이 등장한 건 올해 초부터다. 연초 넷마블은 모바일게임 ‘페이트 그랜드 오더(페그오)’에 접속할 때마다 게임 머니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나흘 만에 이벤트가 일방적으로 중단되자 온라인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 ‘루리웹’ 등이 이용자들의 분노로 들끓었다.
이용자들은 1월 11일부터 26일까지 3주 동안 넷마블 본사 주변에 트럭을 세우고 항의 메시지를 띄웠다. 오프라인 트럭 시위 장면을 담은 사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며 다시 온라인으로 여론을 확산시켰다.
조직적 시위는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넷마블은 권영식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포함해 총 6차례 사과문을 발표했으며, 담당 본부장은 직책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엔씨소프트와 넥슨도 개선을 약속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서 소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던 이용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은 게임의 저변이 넓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사회적 경험이 많은 성인 이용자가 크게 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페그오 이용자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1주일 동안의 트럭 시위에 대당 600만 원 안팎의 비용이 소모된다. 게임사 관계자는 “헤비 유저 중에는 1억 원 가까운 돈을 쏟아붓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이용자들이 모금에 참여하면 아무래도 비용을 쉽게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공통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유대감과 응집력이 과거보다 강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미국 개인투자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 토론방(월스트리트베츠)을 통해 공매도 세력에 조직적으로 맞서기도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게임처럼 동일한 경험을 공유한 집단은 온라인이라는 비대면 환경에서도 강력한 결속력을 갖게 된다”며 “목표가 단순하고 분명할수록 응집 속도도 빠르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