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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멘델스존 기대하세요”

입력 | 2021-02-03 03:00:00

故피천득 외손자 바이올리니스트 재키브
4일 KBS 교향악단과 협연 무대… 아이브스 소나타 앨범 발매도 앞둬
한국인 클라리네티스트와 결혼, 코로나 힘들지만 맨해튼서 허니문



스테판 피 재키브의 KBS교향악단 협연은 2018년 요엘 레비 지휘로 프로코 피예프의 협주곡 2번을 협연한 뒤 2년 만이다. KBS교향악단 제공


“힘든 2020년이었지만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뉴욕 맨해튼 집에서 아내와 함께할 수 있었으니까요.”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피 재키브(36)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알고 보니 그는 지난해 새 신랑이 됐다. 6월 18일 한국인 클라리네티스트 김윤아 씨와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결혼했다.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안토니오 멘데스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과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E단조를 협연하는 그를 서울 영등포구 KBS교향악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야외에서 작게, 지인 몇 명만 초대해 결혼식을 올렸어요. 요즘은 집에서 연습하고, 때론 아내와 2중주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지난해 결혼 얘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는 8월 29일 피아니스트 지용, 첼리스트 마이클 니컬러스와 서울에서 ‘이상 트리오’ 콘서트를 열 예정이었다. 8월 중순 코로나19 확산으로 콘서트가 취소됐다.

“실망이 컸죠. 이상 트리오의 첫 공연이었는데 사라졌고 그 뒤에도 함께 연주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니컬러스는 이웃이라 자주 만납니다.”

이번에 그가 협연하는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바이올린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다.

“제가 열네 살 때 처음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곡입니다. 20년 이상을 함께한 셈이군요.”

그는 이 곡이 낭만주의 곡다운 열정 넘치는 성격과 모차르트적 고전적 성격을 모두 갖췄다고 설명했다.

스테판 피 재키브(오른쪽)가 클라리네티스트인 부인 김윤아 씨와 미국 뉴욕 자택에서 2중주를 하고 있다. 스테판 피 재키브 인스타그램

“절절히 감정을 표현해야 하지만 모차르트적인 가벼움도 담아야 하죠. 너무 센티멘털해지면 위험해요.(그는 영어로 얘기하다 한국어로 ‘느끼해요’라고 덧붙였다.) 희망과 빛을 던지는 마지막 악장에서는 정말 행복해지죠. 서울에 와서 2주간의 격리 동안 내내 이 곡만 생각했어요.”

그의 외할아버지는 수필가 피천득(1910∼2007), 어머니는 피서영 미국 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다. 그가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의 나라인 한국 음악 팬들과 부쩍 친해진 고리는 2008∼2017년 참여한 실내악 프로젝트 그룹 ‘앙상블 디토’였다.

“연주자는 도시에서 도시로 떠도는 삶을 보내죠. 그런 제게 디토는 소속감과 헌신의 느낌, 친밀감을 안겨주었어요. 무엇보다 함께하는 연주의 수준이 너무도 만족스러웠고, 제 음악가로서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장(章)이었습니다.”

그는 피아니스트 제러미 뎅크와 협연한 미국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1874∼1954)의 바이올린소나타 3곡 전곡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20세기 음악에 최고 권위를 가진 ‘넌서치’ 레이블로 발매될 예정이다. 아이브스는 미국인에게 국민 작곡가로 통한다.

“아이브스의 음악은 언뜻 들어 복잡하지만 핵심은 브람스처럼 낭만적입니다. 유년기의 행복했던 기억이 녹아 있죠. 마치 시끄러운 도시를 걷는데 누가 낯익은 향기를 풍기며 옆을 스쳐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한국에서 자란 아내도 이 곡들을 들으면서 어릴 때의 느낌이 생각났다고 하더군요.”

결혼식 얘기로 되돌아갔다.

“부모님은 못 오셨어요. 어머니만 해도 고령(지난해 74세)으로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보스턴에서 오시는 게 위험했죠. 줌으로 결혼식을 보셨고, 따뜻하게 축하해 주셨어요.”

표정이 흐려졌다.

“제가 외아들이거든요. 부모님이 빨리 백신 접종을 받으시고, 예전처럼 문제없이 가서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4일 연주회에서 KBS교향악단은 후반부에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을 연주한다. 1만∼10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