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통화에서 “포괄적인 대북 전략의 조속한 마련에 공감했다”고 청와대가 강조한 것은 미국과 대북 정책 조율을 빨리 시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전략” 채택을 공식화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폐기를 시사하자 서둘러 미국과 조율을 통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북-미 협상 재개를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 백악관은 통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조속한”이라는 표현 없이 “두 정상은 북한 문제에서 긴밀히 조율하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가 기존 대북정책 전반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성급하게 정책을 결정하기보다 한국과 이견들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무리하게 미국에 트럼프 시절의 ‘싱가포르 북-미 합의’ 존중을 설득하려 할 경우 한미 간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靑 “포괄적 대북 전략의 조속한 마련” 강조
다만 백악관 자료에는 청와대가 밝힌 ‘포괄적인 대북 전략’이나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 정착’과 같은 구체적인 표현이 없었다. 북-미 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북한 체제 보장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병행돼야 한다는 문 대통령과 구상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선뜻 동의하지 않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핵과 관련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바이든 대통령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의 통화 후 백악관은 “두 정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美, 한미동맹에 ‘인도태평양’ 대신 “동북아 린치핀”
백악관이 통화 결과를 발표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린치핀(핵심축)인 한미 동맹 강화에 대한 약속을 강조했다”고 한 대목도 눈에 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인 신분으로 문 대통령과 통화했을 때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축인 한미 동맹”이라고 했다.
백악관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통화 결과를 발표하면서 “인도태평양” 표현을 쓰면서 “중국 대응 등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스가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미일 동맹을 “인도태평양 평화와 번영의 주춧돌(코너스톤)”이라고 표현했고 백악관은 “중국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 문 대통령과 통화를 전하는 발표에 중국 논의 대목은 없었다.
청와대는 이날 “가치를 공유하는 책임 동맹으로서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을 넘어 민주주의·인권 및 다자주의 증진에 기여하는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한미 동맹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반면 “핵심축”이라는 표현은 없었다고 밝혀 백악관과 온도차를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레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는 린치핀 정도가 아니라 수레 위에 한미동맹이 같이 올라타 있는 그 업그레이드된 대화가 오갔다”고 했다.
백악관은 “한미 정상이 미얀마의 민주주의 즉각 복원을 위한 필요성에 합의했다”고 했다. 미얀마 얘기는 바이든 대통령이 먼저 꺼냈다. 군부 쿠데타로 미얀마 내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가능성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이 한국에 반중(反中) 연대 동참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효목기자 tree624@donga.com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