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처벌에 적용대상들은 회피 방안 찾을 수도 ‘反기업’ 처벌 강화 아니라 섬세한 정책 고민해야
김용석 산업1부장
“그런데 열심히 한다고 해도 과실 사고가 나요. 미끄러지는 낙상이 현장에선 제일 많습니다. 인과관계를 따지기 어려워요. 규정을 안 지켰다면 처벌받는 게 맞지만, 근로자끼리 부딪쳐 넘어지거나… 여러 경우가 있습니다. 비정형화된 현장이라 사고는 불가항력이에요.”
한 중견 건설업체 대표의 말에는 산업 현장 안전사고에 관한 두 개의 진실이 담겨 있다. 첫째, 기업이 비용을 늘려 손해를 감수하면 사고를 줄일 수 있다. 둘째, 안타깝지만 아무리 손해를 감수해도 사고를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논리는 ‘비용을 늘리면 리스크가 줄어든다’는 공식이 먹힐 때까지만 유효하다. 비용을 아무리 늘려도 안전사고를 완전히 없애는 게 불가능하고, 안전사고가 한 번만 발생해도 사업이 망할 정도로 큰 리스크가 생긴다면 어떨까. 오너이자 대표가 ‘원 맨 플레이’하는 대부분 중소기업에 대표이사 징역은 곧 기업이 망한다는 의미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사업을 접거나, 교도소 담장 위를 걷거나.
국회 입법 과정에서 이 법이 일종의 ‘폭탄’이 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과도한 처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장관, 지자체장을 빼려는 시도도 있었다. 학교장을 제외해야 한다는 등 보완을 요구하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50인 미만 중소기업은 3년 유예했다. 중소기업 유예 조항은 여러 법에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사고가 난 중소기업의 책임자들은 빠지고 원청 대기업만 책임을 떠안는 부조리를 몇 년간 양산하게 했다.
대기업 입장에선 비용 투입 효과가 더욱 불투명해진다. 비용은 큰데 효과가 불투명한 상황은 회피하는 게 합리적이다. 모든 현장에서 그렇지 않겠지만, 이 법은 결국 대기업들이 리스크를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자동화를 선택하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대재해법이 이렇게 ‘폭탄 던지기’가 돼 버린 배경은 무얼까. 1월 18일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한 기자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재벌개혁 의지가 약해진 것 아니냐는 취지로 질문했다. 문 대통령은 재벌개혁 성과 중 하나로 중대재해법을 들어 답했다. “대기업 하청을 통한 위험 외주화 문제, 외주화된 위험을 책임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 산업장 안전 문제도 진일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산업현장 안전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열쇠는 재벌개혁이나 반기업 정서가 아니라 1222개나 된다는 산업안전보건법 규제가 현장에서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효과를 내도록 유도하는 섬세한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