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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 신춘호 농심 회장, 56년만에 경영일선 물러난다

입력 | 2021-02-05 18:51:00

신춘호 농심 회장 © 뉴스1


‘라면왕’ 신춘호 농심 회장(89·사진)이 56년 만에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으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농심은 다음달 25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 신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다. 신 회장 임기는 다음달 16일까지다. 신 회장은 최근까지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본사로 출근해 굵직한 현안을 직접 챙겨왔었다. 하지만 아흔 살에 가까운 고령이어서 이번에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농심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이 경영 일선에 관여하기 어려워진 상황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스스로 ‘라면쟁이’라고 불렀다. 33세가 되던 해 1965년 500만 원의 자본금으로 라면 뽑는 기계를 들여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총괄회장의 셋째 동생인 그는 형의 반대도 무릅쓰고 라면 사업을 밀어붙였다. 이후 그는 너구리(1982년),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를 줄줄이 내놓으면서 히트시켰다.

1986년 출시 후 라면시장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신라면’도 신 회장의 뚝심에서 나온 일화는 유명하다. 매운 맛이 너무 강하다고 우려하던 개발팀에 신 회장은 “천편일률적인 라면시장에 차별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밀어붙였고, 신라면이라는 이름도 스스로 지었다.

해외 시장에선 한국 라면의 세계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 열풍이 해외에도 확산되며 짜파게티와 너구리가 인기를 끈 데에 이어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라면이 각 가정의 비상식량으로 떠오르면서 농심의 해외 매출은 1조 원을 돌파했다.

신 회장의 도전정신은 국내 최초 스낵 ‘새우깡’도 탄생시켰다. “자꾸만 손이 간다”는 노래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새우깡의 이름은 신 회장의 딸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유명하다. 딸이 노래 아리랑을 ‘아리깡’이라고 부른 데서 ‘새우스낵’, ‘새우튀밥’ 등을 제치고 새우깡이란 이름을 떠올렸다. 새우깡의 히트는 양파깡, 감자깡으로도 이어졌다.

농심 차기 회장으로는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63)이 유력하다. 농심의 이번 주총 안건에는 농심 대표이사인 신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됐다. 신 부회장은 1997년 농심 대표이사 사장, 2000년에는 부회장을 맡아오면서 아버지 신 회장을 보좌해왔다. 농심 관계자는 “신 회장이 일단 등기이사직에서만 물러나고 회장직은 유지할 예정”이라면서 “차기 회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