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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는 ‘거버너 리’까지 알고 있었다[오늘과 내일/박용]

입력 | 2021-02-06 03:00:00

세계는 한국경제 작은 변화까지 주시
경제위기 백신 재정신뢰 잃지 않아야




박용 경제부장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단을 만난 경제부처 관료들은 한국 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그들을 보고 놀랐다. IMF 측 인사들은 확장 재정정책과 관련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정치적 논란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거버너 리(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안다”고 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이 지사가 “전쟁 중 수술비 아낀 것은 수준 낮은 자린고비임을 인증하는 것”이라고 기획재정부를 비판한 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논쟁을 벌인 일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선거를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유력 대선주자들의 발언은 국제사회도 주시한다. 재정당국에 호통을 치고 면박을 주는 건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재정과 관련해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도 국제사회의 불신을 키운다.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주장하는 이 지사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가부채라는 건 서류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자들은 동의하기 힘든 얘기다. 국가부채가 많은 나라는 신용등급이 낮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기도 어렵다. 이자도 많이 물어야 한다. 기업이나 금융회사, 시민들의 먹고살 길이 달린 일을 서류상 존재하는 수치라고 폄하할 순 없다.

이 지사는 “국가부채를 늘리느냐 가계부채를 늘리느냐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돈을 안 쓰니 가계가 빚을 내야 한다’는 주장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부풀어 오르고 신용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빚투(빚내서 투자) 시대’에 할 얘긴 아니다. 한국의 가계부채 상당수가 부동산 담보를 끼고 있고 자산가들이 낸 빚이다. 정부가 빚을 내서 돈을 푼다고 해서 줄어들 빚이 아니다. 오히려 생계가 막막해 빚을 내는 사람들을 두텁게 돕는 게 양극화를 막는 길이다.

위기가 터지면 민간부채는 국가부채로 전이된다. 은행이나 기업이 쓰러지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민간부채를 인수해야 할 수도 있다. 재정이 허약한 국가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남유럽 국가들은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재정위기를 겪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단기적으로 돈을 풀더라도 뒷날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건 IMF와 국제신용평가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조언이다.

부채 비율이 선진국보다 낮으니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여당 일각의 주장도 무책임하다. 적정한 국가부채 수준은 없다는 게 정설이다. 안드레아스 바워 IMF 한국미션단장은 “어떤 국가에 대해서도 간편하게 말할 수 있는 최적 부채 수준은 없다”면서도 “한국의 부채 수준은 60%가 적절하다”고 했다. 위기가 닥치면 이것이야말로 장부상 수치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땐 지금보다 재정 상황이 훨씬 나았는데도 해외 투기세력의 공격에 시달렸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7.3%에서 3년 뒤 IMF가 권고한 60%에 육박하는 58.3%까지 상승한다. 코로나19 재확산, 경기 회복 지연, 급격한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안심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 믿음을 주는 탄탄한 국가재정이야말로 경제위기를 막는 백신이다. 선거에 눈이 멀어 개방경제인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상대가 있는 경기를 하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자신감이 지나쳐 IMF 등의 권고를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고 무시할 일도 아니다. 호통을 쳐서 기재부 공무원을 주눅 들게 하고 국내 여론을 움직일 순 있어도 해외 투자자들의 마음까지 돌릴 순 없다. 안타깝게도 위기의 순간 그들은 한국 정치인이 아니라 IMF와 국제신용평가사 등의 조언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