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빈 교수, 사적인 기록 일부 공개 목 주변 손날로 치거나 조른 흔적… 겨드랑이 안쪽 골절 등 고통 극심 전신에 지속-악랄한 학대 가해져… 부검생활 40년중 가장 감정 요동쳐
이정빈 석좌교수가 정인이 사건 재감정을 맡은 소회를 밝히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감정인이 변사자였다면 ‘더 괴롭히지만 말고 제발 빨리 죽여 달라’고 오히려 빌었을 것이고….”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입양아 ‘정인이’의 양모를 지난달 살인죄로 기소하는 데는 아이의 부검 결과를 재감정한 결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이는 국내 최고의 법의학자인 이정빈 가천대 석좌교수(75)다. 그런데 이 교수는 이번 정인이에 대한 보고서를 몇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바로 재감정 보고서에 담았다가 최종본에선 뺀 ‘감정인의 사적인 기록’이란 대목 때문이었다. 이 교수는 “각 분야 전문의 등을 직접 찾아가 의견을 나누고 양모가 (아이를) 발로 밟았단 사실을 확신했다”며 “재감정을 맡으며 느낀 사적인 소회를 감정서 마지막 단락에 써뒀지만 객관성을 고려해 제출 직전에 뺐다”고 했다.
이 교수가 지운 대목을 보면 정인이가 생전에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말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면 정말 ‘차라리 죽여 달라’고 했을 법하다.
“정인이 부검 사진을 보면, 가끔 TV 모금 광고에서 마주치는 아프리카 빈곤층 아이와 흡사합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를 어떻게 이리 아무 망설임 없이…. 정말 끔찍한 광경이에요. 아이는 어쩌면 숨진 뒤 구천에서 ‘(죽여줘서) 고맙다’고 했을 거예요.”
사실 이 교수는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아동학대 사망 사건의 부검을 맡은 적이 수십 차례다. 서울시 아동학대 자문위원을 맡으며 아이들의 몸에 남겨진 학대 정황을 수도 없이 분석해 봤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이번처럼 감정이 요동쳤던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을 겪으며 그가 떠올렸던 건 2014년 최종 판결이 내려진 ‘울산 계모 아동학대 살인 사건’이었다. 당시 이 교수는 “갈비뼈가 부러지고 폐가 손상돼 호흡이 안 되는 데다 심낭 내 출혈까지 있었다”며 “계모가 ‘핏기가 없다’라고 진술했을 때는 이미 죽어가고 있던 상황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이 사건은 국내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큰 이정표를 세웠다. 이 교수의 소견을 받아들인 재판부가 “가해자가 의학지식이 없더라도 피해자를 봤다면 생명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됐음을 인식했을 것”이라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사건에 처음으로 살인죄가 적용된 사례였다.
“정인이 역시 전신에 걸쳐 지속적이고 악랄한 학대가 가해졌을 겁니다. 이미 알려진 두개골 골절과 장간막 손상, 췌장 절단 외에도 허벅지와 옆구리 등 전신에 발등과 같은 넓은 부위로 걷어차인 흔적이 보였어요. 갑상샘(갑상선) 조직과 턱 아래쪽까지 출혈과 손상이 있었습니다. 이런 흔적은 기도가 있는 목 주변을 손날로 치거나 한 손으로 꽉 움켜쥐며 조를 때나 생길 수 있어요.”
이 교수는 법의학이란 “단순히 시신의 상흔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다. 사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정인이 부검 보고서에 단순히 ‘둔력에 의한’으로 표현하지 않고 ‘발로 밟아 췌장이 손상됐을 것’이란 내용을 담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인이 겨드랑이 안쪽 뼈에 생긴 움푹 파인 ‘압박 골절’의 원인은, (양모가) 정인이가 방어하지 못하도록 팔을 들게 한 뒤 때렸기 때문일 겁니다. 이 부위를 맞은 정인이는 아마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거예요. 제가 이 부위의 고통 정도를 체험해 보려고 실제로 동료에게 부탁해 몽둥이로 맞아본 적이 있어서 아주 잘 압니다.”
이 교수는 이날 인터뷰 자리에 자신의 노트북을 들고 나왔다. 11년째 쓰고 있다는 낡은 노트북엔 사건 부검 등과 관련된 여러 자료와 사진이 가득했다. 인터뷰 중간에도 여러 차례 양해를 구하며 수사기관 관계자들과 통화했다. 이 교수는 지금도 또 다른 정인이를 위해 현장 일선에서 싸우고 있다.
감정인이 변사자였다면 죽기 전에는 “이렇게 괴롭히지만 말고 어차피 죽일거 제발 빨리 죽여주세요”라고 빌었을 것이고, 죽은 후에라도 “밟아 죽여줘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표시 했을 것 같다.
박종민 blick@donga.com·권기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