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우리 예절 2021 新禮記] 17대 종손 “정성 들이되 간소하게” 전문가 “아침밥으로 먹을 정도로”… 비싼 차례주 대신 물 올려도 무방
퇴계 이황 선생 종가의 설날 차례상. 사과와 배 등 과일 한 두개와 북어포, 전(차례상 앞줄 왼쪽부터)을 떡국, 술 한 잔과 함께 올렸다. 정성은 들이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간단하게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퇴계 이황 종가 제공
퇴계 이황 선생 종가의 설 차례상에는 이 5가지 음식만 올라간다. 17대 종손 이치억 씨(45)는 “설 차례상은 정성을 들이되 간소하게 차린다”고 말했다. 이는 퇴계 선생의 가르침을 반영한 결과다. 퇴계 선생이 제사상에 유밀과(油蜜菓·밀가루를 꿀과 섞어 기름에 지진 과자. 만들기 번거롭고 비싼 음식을 뜻함)를 올리지 말라는 유훈을 남긴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전통 제례문화 지침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르면 설은 간단한 음식을 차려 조상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날이다. 주자가례에는 설 차례상에 술 한 잔과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을 차리고, 술은 한 번만 올리며, 축문도 읽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김동목 성균관 전례위원회 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형식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김 위원장은 “소고기 산적 같은 제사 음식을 굳이 만들 필요도 없다”며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 한 근 떼다가 구워 올리면 그게 바로 ‘적(고기)’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설 차례상은 떡국 한 그릇과 고기반찬 하나, 후식으로 먹을 과일이면 충분하다. 비싼 차례주를 쓸 필요도 없다. 막걸리 같은 전통주를 사용하거나 물을 따라 올려도 좋다. 과일은 으레 차례상에 올리는 ‘조율이시’(대추 밤 배 감)를 모두 갖출 필요 없이 기호에 따라 먹기 좋은 과일을 올리면 된다. 김 위원장은 “아침밥으로 먹을 수 있는 차례상을 차리면 여러모로 부담이 없다”며 “자신도 안 먹을 음식을 잔뜩 준비해 조상님들 드시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국국학진흥원도 과한 차례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흥원 관계자는 “간소하게 시작된 차례상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며 점차 복잡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며 “거리 두기가 적용된 이번 설을 계기로 차례상이 원래 모습을 찾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